[북·미정상회담 특집] 대북 지원 제재완화 수위에 달렸다

2018-06-08 06:00
한반도 평화체제 대북 지원·투자 기대감…美 제재완화 수위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한이 경제 건설에 전력을 쏟아부을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건설에 총력을 다하겠다며 북·미 정상회담에 나섰다.

강도 높은 국제 제재로 벼랑 끝에 몰린 북한 경제를 재건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영국 투자리서치 회사 유리존SLJ캐피털은 독일 통일 사례 등을 근거로 작성한 최신 보고서에서 비핵화한 북한이 경제적으로 독자생존하려면 향후 10년간 2조 달러(약 2142조원)가량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이 이를 분담하는 게 유력한 선택지가 될 것으로 봤다.

◆남북경협, 北 제재 수위 변수···판문점 선언 명시된 사업 우선순위

우리 정부는 남북경협사업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남북경협의 전개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 이행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방침을 세웠다.

기획재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에 대한 우리나라의 제재, 유엔 등 국제기구의 제재, 미국의 제재 등이 유예 또는 해제되느냐에 따라 남북경협 사업도 모습이 달라질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제재 상황을 살피고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됐던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은 우선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성공업 지구 개설 △6월 14일 장성급 군사회담, 6월 18일 체육회담, 6월 22일 적십자 회담 개최 △남북 철도·도로 협력 분과회의 산림협력 분과회의 개최 △북측 예술단 남측지역 공연 실무회담 개최 등을 우선 전개할 계획이다. 지난 1일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을 통해 합의한 대로다. 당초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10·4 선언'이 기초가 됐다.

그동안 묵혀둔 남북협력기금 활용도 가시화할 전망이다. 남북협력기금은 모두 1조6182억4200만원으로 이 가운데 9592억6600만원을 쓸 수 있다. 다만 남북협력기금은 지난해 편성된 예산이라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국제사회 인식 변화 등 변수에 따라 조정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사업비 조정이 필요한 분야가 발생하면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의도 열 계획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남북경협과 관련된 사업에 따라 기금 예산 변동을 해야 할 것"이라며 "9500억여원에 달하는 남북협력기금이 있기 때문에 추가 예산보다는 이 예산안에서 사업비 조정을 해가면서 남북경협 및 교류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민간 부분의 참여도 기대된다. 지난 3일 민간단체인 북방경제인연합회가 출범했다. 김칠두 전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초대 이사장을 맡아 남북철도 연결사업과 관련, 중국 동북3성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수학여행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남·북·중 교류 협력의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경협에 대해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하고 기업 중심의 협력도 중요하다"며 "북한에 대한 제재 수위에 따라 남북경협의 구체적인 전개방안이 나올 수 있어 북·미 정상회담 결과가 중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총알 막는 맥도날드, 평양에도?···美, 제재 해제 투자환경 조성 무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나 대북 직접 지원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그는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는 건 미국이지만 향후 대북 지원은 미국이 아닌 한국, 중국, 일본이 떠안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브라이언 뱁슨 전 세계은행 북한 담당관은 지난 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출연해 북한을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에 가입시켜 '보통국가'로 세계 경제에 편입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미국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북한도 미국 정부의 직접 지원을 반기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지원이 오히려 북한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기 위한 개방 과정에서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통신은 북한이 미국보다 한국과 중국, 러시아를 더 신뢰한다며 북한이 미국에 바라는 건 제재에서 벗어나 이들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봤다.

미국이 직접 지원 대신 우회로를 찾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최근 미국 민간기업의 대규모 대북 투자 가능성을 거론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의 노하우, 기업인, 모험가들이 북한의 강력한 경제 창출을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블룸버그를 비롯한 외신들은 최근 비무장지대(DMZ) 인근과 북한과 국경을 맞댄 중국 단둥 등지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것도 대북 투자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신흥시장 투자 귀재'로 불리는 마크 모비우스도 최근 한 인터뷰에서 "가능하다면 북한에 꼭 투자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다.

블룸버그는 북한이 '제2의 베트남'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봤다. '도이모이'(쇄신) 정책으로 개혁·개방에 나선 1986년의 베트남보다 북한이 경제 규모가 더 크고 산업화 수준이 높다는 게 이유다. 김 위원장은 경제개발 모델로 사회주의 체제를 지키며 미국과 원만한 관계 아래 경제 발전을 이룬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을 눈여겨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관련해 최근 주목 받는 게 맥도날드의 입점 여부다. 워싱턴 포스트(WP)는 최근 북한이 맥도날드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맥도날드의 북한 진출은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서구 문화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맥도날드가 1990년대 중국과 러시아의 개혁·개방 이정표가 됐다고 지적했다. 

뉴욕 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1996년 쓴 글에서 맥도날드를 받아들인 나라는 세계화와 중산층이 주도하는 경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프리드먼은 지난 20년간 일부 예외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맥도날드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WP는 맥도날드가 총알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