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회담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전격 취소에 대한 북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위임' 담화, 미국의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 시사에 이은 남북 정상 깜짝 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불과 3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지난 1주일간 한반도 운명은 숨가쁜 롤러코스터를 탔다.

뉴욕타임스(NYT)는 “깜짝 놀랄 만하고 어질어질한 반전”이라며 "북한과의 말 폭탄 전쟁 끝에 정상회담 수락을 통해 화해 모드로 급선회했던 때만큼이나 현란한 ‘외교적 댄스’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기의 핵 담판답게 미국과 북한의 현란하고 스펙터클(spectacle)한 밀당(밀고 당기기)은 한 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모두 게임을 하고 있다(Everybody plays games)"고 했다.

◆북한식 벼랑끝 전술, 트럼프 거래기술엔 항복선언··· 협상 주도권 놓고 현란한 '밀당'

북한 지난 24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 대한 일방적 취소에 이어, 최선희 외무성 부상 명의로 담화를 발표했다.

최 부상은 리비아식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방식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얼뜨기'라고 노골적으로 비하하며, "미국이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북한은 돌발 리더십의 대명사인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하며, 비난 성명을 내고 엄포를 놓는 등 이전 6자 회담이나 민주당 행정부 때 효과를 본 과거의 대미 전략 수법을 그대로 꺼내들었다.

이에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24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한 지 불과 3시간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북한의 분노와 적대감을 봤을 때 회담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지난 3월 8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방북 특사단이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비핵화와 회담 의사를 전하고,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즉석에서 수락하면서 회담이 사실상 성사된 지 77일 만이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전화하거나 편지를 하라"며 북·미대화 재개 가능성을 열어뒀다.

마키아밸리적 협상가로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회고록 형태로 쓴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나는 거래를 통해 인생의 재미를 느낀다. 거래는 내게 하나의 예술이다”면서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라고 했다.

그는 저서에서 밝힌 대로 "판이 깨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이기는 협상을 위해 도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여실히 보여줬다.

이 같은 트럼프의 협상술에 북한이 자주 사용해 오던 '벼랑 끝 전술' 수법은 이번에는 결국 통하지 못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협상술은 기선을 잡기 위한 '벼랑 끝 전술'과 조·중 혈맹관계를 겉으로 내세워 미국의 대북 압박을 물타기하려는 ‘찰떡궁합 공조 전술’ 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와 한·미 정상회담 직후 '벼랑 아래로 뛰어내리려면 뛰어내려 봐'라는 식으로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자 북한은 적잖게 당황한 분위기였다.

결국 북한은 8시간 만인 지난 25일 오전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로 ‘위임에 따라’ 담화를 발표하고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다”면서 여전히 북·미 정상회담을 원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특히 김계관 제1부상은 “‘트럼프 방식’이라고 하는 것이 쌍방의 우려를 다 같이 해소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에도 부합되며 문제 해결의 실질적 작용을 하는 현명한 방안이 되기를 은근히 기대하기도 하였다”고 언급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따뜻하고 생산적인 담화”라며 “아주 좋은 뉴스”라고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측에 맹비난을 퍼붓던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 일단 협상 주도권을 회복했다. 


 

◆다시 빛난 문재인 대통령 '중재자론'··· 한·미 회담 이어 긴급 남북 회담 이끌며 북·미 양측 조율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가 나오자, 곧바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들을 관저로 불러 긴급 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난 뒤 25일 새벽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며 “(북·미)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한 지 하루 만인 25일(현지시간), 6·12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수 있다고 말해 상황은 급반전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참석차 헬리콥터에 탑승하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북한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 미 언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그들(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매우 원하고 있다”며 “우리(미국)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 심지어 (내달) 12일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26일 극비리에 북측 판문점 통일각에서 만나 전격적으로 2차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동안 '한반도 운전자론'을 피력하며 북미 간 중재 역할을 자임해왔던 문 대통령이 위기가 닥치자, 보란 듯이 운전대를 꽉 쥐고 정면 돌파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한반도 운명은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이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 적대를 청산하고 경제를 돕겠다는 의지가 분명하고, 북한 또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계획이 있다는 걸 미국에 전달하면서 북·미 정상회담을 보증했다.

두 정상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한반도 평화·번영 비전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해 4·27 판문점 선언의 신속한 이행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는 한편, 북·미 정상회담을 꼭 성사·성공시켜 남·북·미 종전선언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뤘다.
 

◆12일 북·미 정상회담 위해 양국 간 실무회담 본격 착수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자국 시민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 6월 12일 싱가포르를 검토하는 중"이라며 "그것(북·미 정상회담 개최 검토)은 변하지 않았고, 매우 잘 진행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차원의 논의와 관련, "여기서 멀지 않은 어떤 장소에서 미팅이 진행 중"이라면서 북·미 간 사전 접촉 사실을 공개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 재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이 하루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정상회담이 12일이 넘어서까지 연장될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곧바로 이어서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위한 남·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방안을 시사한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일단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26일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김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거듭 확인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복원 전망은 한층 밝아진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은 이번 접촉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장소, 경호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가 우여곡절을 거쳐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에 본격 착수함에 따라 '세기의 담판'이 최종적으로 성사될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