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용 칼럼] 4차 산업혁명과 두 개의 세상
2018-04-05 13:20
IT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실물 세상(Real World)이고, 또 하나는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 세상(Digital World)이다. 예전만 해도 디지털 세상은 실물 세상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수단이었다. 고객들이 은행에서 창구 직원을 통해 업무를 보고 나면 뒷단에서 그 내용들을 컴퓨터로 처리하여 다시 창구에 처리 결과를 제시해 준다든지, 고객들이 백화점에서 편리하게 물건을 구매하도록 뒷단에서 자재관리, 물류 등의 업무을 자동화하여 지원하는 것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실물 세상의 보조 역할만 했던 디지털 세상이 도리어 실물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디지털 세상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실물 세상에서도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쟁력이 실물 세상에서의 기업 경쟁력 혹은 개인 경쟁력이 되는 세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이러한 현상들은 오래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미국 전역에 서점을 보유하면서 가장 많은 서적을 공급했던 보더스란 기업은, 책을 실물 세상의 서점이 아닌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세상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온라인 서점을 시작한 아마존이라는 작은 신생기업에 10년이 채 안 되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외에도 영화 비디오 유통의 세계적인 기업인 블록버스터도 디지털 세상의 경쟁력을 따라가지 못해 파산한 사례 등, 이제는 디지털 경쟁력이 실물 세상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시대가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MIT의 피터 웨일 교수가 어떠한 비즈니스를 하든지 디지털 경쟁력을 깆춘 기업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이익률이 평균 30%나 높게 나온다는 보고를 한 것을 보면, 실물 세상이 얼마나 디지털 세상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영향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얼마 전 필자는 새로운 학회를 만들면서 정부에 등록을 하게 됐는데, 인감도장·인감증명서·등기부등본 등 요구되는 무수한 서류들을 보면서 우리를 진정 IT 강국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러한 것들은 왜 아직도 디지털화되지 못하는 것인지. 간단한 기업 통장 하나 만드는 데 요구되는 수많은 서류가 필요하고 사인해야 하는 수많은 관련 서류들을 보면서, 우리는 아직도 디지털 세상을 실물 세상의 보조 수단 정도로만 여기고 있다고 보여진다.
디지털화되어야 하는 미래의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필자는 화폐라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디지털 화폐의 세상이 올 것으로 전망되고 이에 대한 경쟁력이 곧 은행의 경쟁력, 아니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으로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암호화폐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도 많이 있고 무분별한 투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미래에 디지털화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디지털화될 것”이라는 데 공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이를 금지하는 정책은 디지털 세상에서의 경쟁력을 외면하는 정책이 아닌가 한다.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인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사실 변화라는 것은 고통이고 리스크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 없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위를 점할 수 있을까. 디지털 세상에서의 변화는 실세계의 변화보다 훨씬 빠르고 대규모로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실물 세상을 기반으로 하는 고정관념이나 경험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능의 척도는 변화하는 능력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