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칼럼] 토지공개념과 빨갱이론
2018-04-03 20:00
몇년 전까지 정치권을 기웃거렸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는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기용된 적이 있다. 김 전 대표는 당시 이 자리를 그냥 덥석 받지 않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조건부터 내걸었다. “부동산 투기 문제부터 꺼냈습니다. 만연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토지공개념의 확대 도입과 재벌에 대한 직접통제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얘기했어요. 그리고 '이런 정책을 강행하면 3개월만 지나도 뒷다리를 걸고 엄청난 견제가 들어올 텐데, 이를 대통령이 막아 주어야 한다. 부총리 등 경제팀은 나와 호흡이 맞는 인물로 해달라. 이런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경제수석을 맡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필자가 십수년 전 김 전 대표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그의 이런 요구가 통했는지, 이를 전후해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이 전격 도입된다.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등이다. 하지만 곧 관가와 경제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정부 고위층에 빨갱이들이 침투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유재산권 보호가 자본주의의 가장 기본인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토지의 소유와 처분을 적절히 제한한다는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정책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경제기획원의 한 핵심국장은 ‘당신 빨갱이 아니냐. 척결하겠다’는 협박전화를 직접 받기도 했다. 주무당국인 건설부의 토지공개념담당 국장은 뇌물을 받았다는 투서에 스스로 옷을 벗어야 했다. 김 수석을 비롯한 다른 관련 고위공직자들도 하나둘씩 속속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이런 집요한 저항이 통했는지 3법 중 2법은 이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폐지됐다. 현재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다. 토지공개념은 기존의 헌법에도 그 취지가 담겨 있었지만 해석상의 개념이어서 이에 근거해 시행된 정책의 상당수가 위헌 시비를 일으켜 도입과 폐지를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토지공개념을 이렇게 완화하고 난 후 현재의 부동산시장은 잘 돌아가고 있는가?
보다 큰 문제는 경제 전반에도 너무나 큰 피해와 부작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너도나도 어렵게 집 장만을 하다 보니 보통 가정들마다 빚더미다. 빚이 많다 보니 소비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것은 내수경기 침체로 연결된다. 역대정부가 아무리 내수부양책을 써봐도 내수는 꿈쩍 않고, 수출에만 의존하다 보니 경제성장률이 이젠 3%만 되어도 잘했다고 한다. 결혼기피 풍조와 세계 최저수준의 출산율, 이에 따른 인구 감소 조짐 등도 과도한 사교육비 등과 함께 너무 올라버린 부동산값이 큰 원인이다. 워낙 만성적 문제여서 우리 모두 지금은 불감증에 걸려 있지만 종합하면 부동산이 우리 경제 장기침체의 주범 중 주범이라는 얘기다.
이렇게 문제가 심각하고 고질적이면 정부의 적극 개입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이런 적극 개입이 어떻게 빨갱이이고, 시장경제에 대한 중대 도전인가. 오히려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것 아닌가. 대표적 자유방임주의자인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초기 경제학자들도 토지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땅 주인이 얻는 불로소득을 비판했다.
역대 정부는 말로는 부동산 투기 근절을 부르짖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또 좌우를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가 도입한 토지거래허가제, 종합부동산세, 용도지역 지구 지정을 통한 토지이용규제 등은 이미 토지공개념이 반영된 것들이다. 따라서 현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반영하자는 것은 토지공개념을 보다 확대 강화하고 위헌(違憲) 시비를 부르지 않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현 정부가 한다고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또 설령 개헌안이 흐지부지되더라도 이 고질적인 문제만은 체제의 흥망성쇠를 걸고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이 땅의 보수우파들은 토지공개념이 아니라 심각한 불평등과 과다한 불로소득이 체제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고 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원천차단하는 문제를 여야가 합심해 본격 논의해야 한다. 토지공개념의 헌법 명문화가 어렵다면, 각종 세법으로라도 과다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과감히 환수하는 시스템의 확대 도입부터가 절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