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화 칼럼] 경제규모의 팽창은 동맹(同盟)이다
2018-04-01 13:22
패권국과 강대국의 필수요소, 동맹(同盟)
1855년 9월 영국과 프랑스 해군은 러시아의 세바스트로폴 항구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을 압박해 흑해를 통한 해양진출을 노리던 러시아는 영불 연합에게 전례 없는 참패를 당하고 본래의 전략을 접어야 했다. 이 전쟁이 바로 “크림전쟁”이다. 몇 년 후 영국과 프랑스는 2차 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마저 함락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막강한 두 제국이 강소동맹에게 무릎 꿇는 순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영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다.
인구수, 영토의 크기, 전반적인 지적수준(?)을 볼 때 영국은 결코 패권국이 될 만한 요소가 없다. 그러나 역사는 분명 그들 편이었고, 서유럽 끝의 섬나라는 오늘도 막강한 국력을 과시하며 국제여론을 주도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국제정세를 살피며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다. 영국은 10세기 이래로 고도의 개방경제였다. 계몽주의 시대 프랑스와 독일이 창조해 낸 과학의 결과물을 후발주자 영국은 “재산권의 확립”을 통해 시장화 시켰고, 멋지게 흡수했다.
따지고 보면 영국은 기존의 패권국 몽골, 오스만 투르크, 만주족의 청나라처럼 그리 전투적인 국가도 아니다. 단독으로 직접 맞붙어 승리한 전쟁도 별로 없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열린 사고는 동맹국들과 연합 및 대립(Balance of Power)의 반복을 통해 무굴제국을 통치했고, 무적함대 스페인, 나폴레옹을 제압한 러시아, 마침내 청나라마저 굴복시킨 후, 20세기 최대 사건인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도 승리했다. 그들의 정체성이 얼마나 역동적이고 결정적인 이권 앞에서는 과감한 희생을 감수하는지 알 수 있다.
경제와 전쟁은 “무협지”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
위의 사례처럼 동맹은 국가의 운명을 바꾸고,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내는 마법을 발휘 한다. 그것을 가장 잘 활용한 게 영국이라는 국가다. 본인들이 가진 국력에 2배 이상 시너지를 발휘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 쯤 고민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봤을 “한미동맹”이라는 문제를 위의 필터링으로 바라보자.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이 귀중한 관계에 대한 시각은 2가지인 것 같다. 당장 없어져야한다는 세력이 존재하며, 또 다른 시각은 필요는 하지만 왠지 찜찜한 무엇으로 해석한다. 다른 하나를 더하자면 한미관계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던지 아니면 관심이 없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해양세력 영국의 정체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미국이라는 21세기 하이퍼파워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합목적(合目的)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좌우정치 이념을 떠나 한국인들이 버려야 할 한 가지가 기존의 강국들처럼 실무적인 무언가를 위해 피를 흘려본 적 없는 문명이 가진 박약(薄弱)함이다. 그러다보니 미국과의 관계를 현실적인 필요성에서 벗어난 “상하관계”로 해석하는 것이다.
공명정대(公明正大), 정정당당(正正堂堂)과 같은 주자학에 찌든 선비들의 이론은 농업경제에 기반을 둔 엘리트계층(선비)의 사회지배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구조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속에서 경제적 이권, 개인의 부(富), 전쟁 수행능력과 같은 실리적 사고는 존중받지 못 할뿐더러 제거대상이다. 한미관계는 상하관계가 결코 아니다. 냉전시대 두 축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적인 선택이었으며, 경제모델을 두고 선택을 반강제적으로 강요받았던 시기의 올바른 선택이자 업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라는 좁은 틀로써만 한미관계를 바라본다면, 분명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정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도 한미동맹은 필요하다. 100명이 전사하고 승리할 전쟁터에서 10명이 전사하고 승리하는 것은 분명 실리적인 것이다. 한미동맹의 역할은 희생을 최소화 하고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요소를 방어하는 가장 현실적인 국가 관계다. 전쟁과 외교는 무협지 주인공들의 세계관인 공명정대(公明正大)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가장 현실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합목적(合目的) 세계관이 중요하며, 한미관계는 이것을 증명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미동맹, 대한민국이라는 경제강국(經濟强國)을 탄생시키다.
20세기 초반 세계10대 강대국과 오늘날 세계10대 강대국들은 거의 똑 같다. 여기에 딱 한 나라가 추가되었는데, 그 하나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자신들이 가진 문명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개조해서 성공한 사례가 우리의 근대사인 것이다. 뒤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건국이후 줄곧 국력팽창의 역사였다. 경제규모, 군사력,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과 고유명사로서 “카스트 제도”를 완벽히 붕괴시킨 국가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이러한 바탕에는 한미동맹이 존재한다.
영국과 대한민국은 국토면적과 인구수에서 비슷하다. 필자의 희망사항(?)일지 모르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종합국력이 영국의 그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도 없을뿐더러 삶의 질에선 오히려 앞서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건국 이래로 줄곧 서구의 성공사례를 착실히 흡수했으며, 그들의 목적지향적인 세계관이 탄생시킨 생산적인 지식도 우리 것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결과는 물리력과 지적능력(High Intelligence)을 모두 갖춘 미국이라는 패권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그들을 활용했는지를 보여준다.
한미동맹은 그 관계만으로 대한민국이라는 신생 강대국을 탄생시켰다. 냉전시대 국가지도부들의 통찰력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가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디딤돌은 한미관계다. 대한민국은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냉전시대의 두 “빅브라더”들과 붙어있다. 과거 영국의 세력균형 전략(Balance of Power)은 개방경제와 함께 딱히 강국도 아닌 그들을 패권국가로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 영국이 동맹외교를 통해 전략균형을 이루어냈던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