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의 연예프리즘] #이윤택#미투운동#성추행 "그저 일상이었어요"
2018-02-21 00:00
"에이, 대표님~ 왜 이러세요. 내일 날 밝으면 제 얼굴 어찌보시려고 이러세요. 정신차리시고! 술 드시고! 제가 노래 한 곡 부르겠습돠~"
의욕이 앞섰던 20대 신출내기 기자 시절에는 온갖 술자리를 모두 따라갔다. 단란주점에도 가고 술집 언니들과 함께 잡담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취재원 확보를 위해 친해지기 위해 오로지 그 목적 하나로 버티는 자리였지만 술이 오르고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깊어지면 동석했던 남자들의 눈빛이 달라진다. "어, 이거 봐라? 집에 안가네? 나한테 마음이 있나?"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점잖은 척하던 회사 대표, 정치인, 의사, 변호사 등 직종 불문 모든 남자들은 거의 비슷했다. 남자기자들은 함께 단란주점에 가고 2차를 가고 사우나를 하고 나서 다음날 새벽을 맞이하면 서로 묘한 동지(?)의식을 싹 틔우며 다음에 만날 때 "동생, 형"이 되는 경우가 다분했지만 여기자들은 그저 술자리를 버틸수록 돌아오는 건 성적인 농담과 추근거림들이다.
작은 신문사, 잡지사의 경우 데스크라는 지위를 이용해 여기자들을 추행하고 성폭행을 하려는 경우도 숱하게 봐왔다. 대부분 어리고 경험이 없고 미숙하기 때문에, 무서워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면 "니가 꼬리를 쳤겠지~"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두려워서 모두 가슴에 묻고 만다.
최근 연극 연출가 이윤택(66)의 성추행 논란으로 예술계 안팎이 시끄럽다. 지난 19일 오전 이윤택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공개 사과했지만 배우 김지현, 이승비 등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연이은 성추행 폭로로 사과가 무색해졌다.
이 캠페인으로 미국 사회 전반에 ‘성폭력 고발 열풍’이 일었고, 영화계를 넘어 정계·경제계·노동계·언론계 등 각 분야에서 수백만건에 달하는 성폭력 피해가 폭로·고발됐다. 우리 사회 역시 '미투 운동'의 영향이 밀려오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여자들이 야한 옷을 입고 요란하게 화장하고 남자들을 꼬시니까 성추행이 일어나지. 언행을 조심해야지" 화장하지 않고, 야한옷도 입지 않았고 유혹적인 말투 하나 눈짓 하나 해본적 없고, 그저 노트북이 들어간 큰 가방 하나 메고 뛰어다녔을 뿐이지만 성추행을 밥먹듯 당했다. 기자라는 직종 또한 그럴진데 예쁜 얼굴과 멋진 몸매로 본인 자체가 상품인 연예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온갖 모욕적인 상황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좋게 좋게 넘어가지, 뭘 그렇게 뾰족하게 그러냐" "시끄럽게 만들지 말자"··· 용기가 없어서 주목받는게 두려워서 뒤로 숨던 여성들이 용기를 내 털어놓기 시작했다. 페미니즘도 아니고 피해자 코스프레도 아니다. 이 사회의 지배적 위치에 있었던 남성들, 특히 돈과 권력과 힘을 갖고 있는 남성들은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을, 그들이 일상적으로 행했던, 폭력인줄도 모르고 휘둘렀던 말과 행동에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뿐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용기 내는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서 울고 있을 그녀들, 이제 용기를 내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