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포털 규제법과 네트워크 시대의 미디어
2018-02-13 06:00
최근 창당한 민주평화당의 김경진 의원이 일명 '포털 규제법'을 지난 8일 대표 발의했다. 신규 법안 제정이 아닌 기존 법률의 개정을 통해 포털 사업자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요청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된 기존 법률은 3개다. 전기통신사업법,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 3개 법의 개정을 통해 완성될 ‘포털 규제법’은 민주평화당의 전신인 국민의당의 당론이었다. 네이버로 대표되는 대형 포털의 인위적 뉴스 편집 등에 의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 국민의당이 포털 사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법률로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법률안 제안 이유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요약하면 "인터넷 포털은 미디어 유통사업자로서 사회적·산업적 영향력이 있음에도 기사 배열 영향력 행사, 검색어 순위 조작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언론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서"이다.
당연히 사회적 논란이 예상된다. 개정 발의된 3개의 법률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포털 사업자에게 언론의 공정성을 강제하기 위해 새로운 조항들을 추가했다. 포털 사업자는 언론사가 위탁하는 기사 외에는 기사를 게재할 수 없다. 포털 기사 배열은 자동화된 원칙에 따라 배열하고 그 원칙은 공개하도록 규정돼 있다. 자동화된 원칙, 즉 알고리즘에 의해 기사를 배치하고 알고리즘의 소스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이를 거부하거나 조작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포털 사업자의 작위적 기사 배치, 검색 결과의 왜곡 등을 막을 수 있게 된다고 본 것이다.
개정안은 언론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서라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미디어 개념을 축소한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포털 사업자와 언론사를 구별하고 있다. 포털 사업자를 인터넷 종합정보 사업자로 규정하면서 언론사의 창구로만 이해하고 있다. 언론사에서 만든 기사를 알고리즘에 의해 배치하는 것이 포털 사업자의 임무다. 즉, 포털은 언론이나 미디어가 아니고 단순 중계업에 지나지 않는다. 중계업자가 할 일은 기사 생산자와 기사 소비자를 정해진 규칙에 의해 연결하는 일이다. 자신의 의도를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는 기사 생산자, 기사 전달자, 기사 소비자가 구별되지 않고 혼재돼 있다.
알고리즘 강제 공개 역시 문제점이 많다. 기사 배치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개인이나 기업의 지적재산권이다.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적 알고리즘을 공정성이라는 명목으로 공개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민간 분야의 자율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포털 규제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수도 있다. 법적 정의가 쉽지 않은 공정성이라는 개념으로 개별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알고리즘을 공개하라고 강제하기 시작하면 사회적 이익보다는 손실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특정 기업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으로 크면 법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 미래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된다.
포털 규제법이 발의된 이유는 이해하지만, 법적 강제는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특히 네트워크 시대의 미디어에 관해서는 좀 더 신중해야 된다.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법과 제도 역시 제·개정이 요청되고 있지만 규제보다는 진흥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더 많은 미디어가 나타나고 그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정보와 콘텐츠가 유통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가 많고 정보 유통이 잘되는 사회는 좋은 사회다. 억압 시대의 고통과 개방된 사회의 환희 둘 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사회경제의 민주화는 쉽게 오지 않는다. 급하다고 해서 법을 통한 해결방안을 모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