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블록체인의 가능성과 한계

2018-02-27 06:00

[사진=김홍열 초빙 논설위원·정보사회학 박사]


지난 1월 정부가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잠시 하락했던 가격이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 1비트코인당 1200만원대로 가격이 회복됐다. 1월 6일 고점 2598만8000원에 비해서는 2분의1 수준이지만 한때 770만원대로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많이 회복됐다고 볼 수 있다. 가격 회복에는 여려 요인들이 있다. 국내에선 2월 20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가상화폐가 정상적 거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겠다”라고 한 발언이 호재가 됐다. 해외에서는 미국 조지아주의 마이클 윌리엄스 의원과 조슈아 매쿤 의원이 세금을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의 거래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국가 차원의 규제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과 같은 국제기관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 공동체의 규제가 예측되거나 실제로 집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인식 또한 부정적 측면이 최근 많이 조성되고 있다. 투자가 아니라 투기로 변질됐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들이 유통되면서 단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의 호기심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만 갖고 가상화폐의 미래를 예측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아니 어불성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가상화폐가 아니라 가상화폐를 작동시키는 블록체인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가상화폐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백개의 가상화폐가 거래소에서 유통되고 있고 새로 만들어진 가상화폐가 계속 거래소로 진입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화폐들이다. 가상화폐는 축소되거나 또는 다른 방식으로 전환될지 모르겠지만 블록체인의 매력은 이제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장점은 독점 해체의 가능성에 있다. 가상화폐는 블록체인이 실제 서비스로 구현된 사례 중의 하나다. 가상화폐가 국가의 화폐 발행 독점권에 저항하면서 유통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들이 화폐 발행의 국가 독점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독점에 대한 비판적 의식 또한 존재한다.

인터넷 네트워크 시대에 블록체인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이유는 인터넷 세계가 결과적으로 개방과 공유의 정신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유튜브 같은 일부 글로벌 기업이 시장과 정보를 독점하는 폐쇄적인 구조에서는 더 이상 개방과 공유의 미래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국내의 사정도 유사하다. 국내 검색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네이버의 인위적 뉴스 편집 등에 의해 피해를 봤다면서 해결책의 일환으로 일명 '포털 규제법'이 지난 8일 발의되기도 했다. 현재 인터넷 시장에서는 특정 기업이 시장을 선점하게 되면 후발 주자들의 참여가 어려워 결과적으로 독과점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과 같은 독과점의 세계를 상상하기 힘들었다. 인터넷의 모태는 미 국방부였지만 1960년대 서비스가 시작되고 1970년대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이후로 컴퓨터 엔지니어와 학자들은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다. 개인들은 매스미디어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수동적 정보수신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보를 만들고 유통시킬 수 있는 정보 제공자가 되었고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가상공간에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PC의 대량 보급과 스마트 폰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이 불확실해질 때 등장한 것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초기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와 같은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블록체인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인터넷 세계가 처음 취지와 달리 지금은 변질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인터넷 관련 주요 기업들에 의한 정보 독점뿐 아니라 정부나 국가기관에 의한 정보 독점 역시 실제로 존재한다. 개인들의 사적 정보가 동의 없이 특정 기업이나 국가기관 서버에 저장되어 있고 개인을 구속하거나 기업의 사적 이익을 위해 오용되기도 한다. 인터넷이 개방과 공유의 정신을 구현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실제 결과는 중앙 서버에 의한 정보 독점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는 중앙 서버 없이 개인들을 연결할 수 있다. 그러나 블록체인이 인터넷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몇몇 기업이나 국가 기관의 독점을 해체할지는 분명하지 않다. 미래는 기술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블록체인을 이용해 상품 서비스를 개발하고 판매하게 되면 그 이익의 대부분은 서비스를 만든 기업이나 투자자들에게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전망이 좋다고 판단되면 대기업이 진출하게 되고 결국 소수의 대기업에 의한 시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 자본주의 시대의 기술은 초기에는 진보적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본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기술로서의 블록체인이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블록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