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루저 인간이 해야 할 일
2018-01-23 06:00
한국에서 유발 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인공지능 알파고가 입신의 경지에 오른 바둑 구단 이세돌을 이긴 충격 때문이었다. 사실 그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정보처리 능력에 있어서 인간은 이미 인공지능에 적수가 못 된다. 바둑은 신의 유희에서 인간들의 게임으로 내려왔고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없어졌다.
이제 다음 선수는 지식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독해력이다. 자료를 찾아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독해력은 정보처리과정과 달리 텍스트에 대한 이해와 콘텍스트에 대한 사회문화적 맥락 분석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가능하다.
최근 인간과 인공지능이 독해력 시험을 봤고 결과는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났다. 보도에 의하면, 중국 알리바바 그룹이 개발한 인공지능이 미국 스탠퍼드대 주관 독해시험에서 인간보다 높은 성적을 받았다. 자연언어 처리를 기반으로 한 독해시험에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긴 건 처음이다. 자연언어는 인간들의 음성을 알파벳으로 옮겨 놓은 인간의 언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사용되는 컴퓨터 언어와 다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언어와도 다르다. 호모 사피엔스가 직립하기 시작하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체계화시킨 인간 고유의 무기다. 이 자연언어를 인공지능이 읽고 분석했고 자신의 능력을 활용, 재구성해서 인간을 이겼다.
오히려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다. 언어의 천재라고 하더라도 동시에 수십개의 언어를 마스터할 수는 없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중세나 고대의 언어를 습득해서 원전을 독해하기 위해서는 길게는 수십년을 투자해야 한다. 번역된 책이 실제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도 문제다. 검증할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일단 특정 전문가가 동의해주면 사실과 상관없이 교과서로 인정받는다. 이런 사례들은 많다. 역사학자가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다고 주장을 했고 이런 주장을 아직도 믿는 사람들이 있다. 텍스트에 기반하지 않거나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사례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식은 단지 하나의 도구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세돌이 바둑에 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바둑이라는 취미나 오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지식은 바둑보다 의미가 더 크지만 본질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유기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을 계속 유지하는 일련의 노력들이다. 살고 사랑하며 노동하고 휴식하는 것이 본질이다. 지식과 오락은 이 과정을 원활하게 유통시키는 매개일 뿐이다. 어느 순간 본질과 현상이 전도됐다. 인간의 지식이 인간 삶의 주인이 되어 인간을 구속시켜왔다. 지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제도 교육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이어졌고 영어 광풍으로 이어졌다.
이런 지식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 모든 정보를 흡수해서 분석하고 이해하고 완성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알리바바의 인공지능이 싸움에서 진 루저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그러나 호모 사피엔스는 결코 만만한 유기체가 아니다. 수억년 진화의 산물이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협력하여 공동의 선을 만들어왔다.
공동의 선은 지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선택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다. 돈을 잘 버는 지식에서 돈을 잘 쓰는 지혜로 전환해야 된다. 다시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인공지능의 능력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고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지식은 지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