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지성우교수의 헌법으로 읽는 정치와 인권-정국운영의 숨은 파트너 “국회의장”
2018-01-29 16:15
I. 들어가는 말
국회의 다선의원이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직책은 국회의장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나긴 정치역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는 의전서열 2위에 수천 명의 국회직원들의 인사권과 재정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화와 타협으로 법안을 통과시키지만 여야 간의 대립이 심각하거나 국가적 위기 시에는 직권으로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해서(소위 ‘직권상정’) 통과시킴으로써 정부·여당의 정책을 뒷받침하기도 한다.
하지만 18대 국회 말에 국회선진화법이 제정되면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을 행사하는 요건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와 국회의장은 정부·여당의 국정운영의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다. 국회의장의 선출을 둘러싼 정당 간의 치열한 물밑교섭과 타협이 필요한 이유를 살표보기로 한다.
II. 국회의장 선출, 지위 및 권한
1. 국회의장의 선출과 직무대리
국회가 개회되면 국회는 의장 1인과 부의장 2인을 선출해야 한다(헌법 제48조). 다만 국회의원총선거 후 처음 선출된 의장과 부의장의 임기는 그 선출된 날부터 개시하여 의원의 임기개시 후 2년이 되는 날까지로 한다(국회법 제9조). 다만 보궐선서에 의한 경우에는 전임자의 잔임기간으로 한다(국회법 제9조 1항).
의장과 부의장은 국회에서 무기명투표로 선거하되 재적의원 과반수의 득표로 당선되며, 선거는 국회의원총선거 후 최초집회일에 실시하고, 처음 선출된 의장 또는 부의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그 임기만료일 전 5일에 실시한다(국회법 제15조).
의장이 사고가 있을 때에는 의장이 지정하는 부의장이 그 직무를 대리하며, 의장이 심신상실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게 되어 직무대리자를 지정할 수 없는 때에는 소속의원 수가 많은 교섭단체 소속인 부의장의 순으로 의장의 직무를 대행하게 한다. 그리고 의장과 부의장이 모두 사고가 있을 때에는 임시의장을 선출하여 의장의 직무를 대행하게 한다(국회법 제12조 및 제13조).
2. 국회의장의 지위
국회의장은 대외적으로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 최고기관으로서의 역할과 대내적으로는 국회의 질서유지와 국회사무를 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3. 국회의장의 권한
헌법과 국회법에 의하면 의장의 권한으로는 국회대표권, 의사정리권, 질서유지권, 사무감독권과 기타의 권한을 들 수 있는데, 기타의 권한에는 임시회집회공고권, 의사일정작성변경권, 방청허가권, 대통령이 확정법률을 공포하지 않을 때의 법률공포권 등이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여야의 쟁점법안을 본회의에 바로 부의하는 ‘직권상정권’이다.
III. 제20대 국회의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과정과 중요성
1. 국회의장의 선출 관례
그동안 국회는 여당(대통령이 소속한 당)이 대부분 총선결과 다수당이 되었다. 관례적으로 다수당인 여당 내에서 협의를 거치되, 대부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최다선의원이 선출되어 왔다. 그러니까 국회의장이라는 직책은 대부분의 경우에 ‘여당의 최다선의원’이 명예롭게 정치인생을 마감하고 은퇴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국회의장 임기 2년이 지나면 대부분의 전직 국회의장들은 대학의 석좌교수나 연고 있는 연구기관 등의 이사장 등으로 활동해왔다. 물론 김형오 전국회의장처럼 콘스탄티노플의 멸망과 이스탄불의 성립사를 다룬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라는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는 전문서적을 출판하는 일도 있었다. 모든 국회의장들은 국가의 위기 시에는 나라의 어른으로서 대통령과 후배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운영방안에 대해 수시로 조언하기도 한다.
다만 지난 2002년 총선에서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박관용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예가 있다. 또 최근 2016년 4월 실시된 제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122석, 더불어민주당 123석을 차지하여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전대통령이 소속한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의 의석수가 많았다. 많은 논란 속에 14년 만에 20대 국회 첫 국회의장에 더불어민주당 정세균의원의 선출되었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원 정원 300명에 훨씬 못미치는 의석을 얻었기 때문에 당시 제3당이었던 국민의당의 협조를 얻어야 했다. 국회법 제15조에 의하면 국회의장의 선출방식은 약간 독특해서 출석의원의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되는 일반적인 국회의 법률안 처리절차와는 다르게 출석의원의 수와 관계없이 재적의원의 과반이 찬성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논의와 교섭의 결과로 선출된 정세균 국회의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국회를 전반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국회의장으로서 지난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의결하는 의사봉을 두드리기도 했다.
2. 국회의장직의 중요성
국회의장은 대통령 다음인 국가의전서열 2위의 대우를 받으며, 4천여 명의 국회직원에 대한 인사권, 국회 예산권, 본회의장 질서유지·경호권과 아울러 국회의사 일정 지정권, 예·결산안 및 법안 심사기간 지정권 등을 갖는다. 이를 위해 20여명의 보좌진과 경호원은 물론이고 특수활동비도 부여된다.
국회의장은 명예직에 가깝기 때문에 은퇴를 앞둔 다선의원이 맡는 게 관례이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1950년 생으로 문대통령(1953년), 이나 대법원장(1959년)보다 나이가 많다. 겉으로 보면 정당의 입장에서는 국회의장직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야 하는 게 맞는데 실제로는 번번이 자기 당에서 국회의장을 배출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작업과 타협을 해왔다. 정당들은 왜 국회의장직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국회의장이 행사하는 직권상정제도에 있다.
3.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
이론적으로 국회는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법안을 상정하고 통과시켜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막상 쟁점이 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면 야당(또는 야당들)이 강력하게 이를 저지해왔다. 제16대 국회에서 6차례에 불과했단 직권상정은 17대 국회에서는 29차례, 18대 국회에서는 97차례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직권상정이 될 때마다 국회에서는 강행처리하려는 여당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 간의 몸싸움과 폭력이 발생해서 해외토픽에 여러 번 소개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18대 국회에서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하자 야당의원들이 망치, 해머 등을 동원해서 출입문을 열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과 막말이 난무해서 국회가 난장판이 되어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 이에 18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날인 2012년 5월 2일 여야 합의로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었다. 이 법은 여야의 갈등이 첨예화되더라도 국회에서 몸싸움과 막말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 법에 의하면 국회의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천재지변이나 전시·사변 등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직권상정을 할 수 있다.
둘째,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의에서 무제한의 토론(필리버스터)을 할 수 있다.
셋째,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
즉 이 법에 의하면 국회 내의 다수당이라 하더라도 의석수가 5분의 3(현재 전체 의석수가 300석이므로 180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처리는 불가능하다. 만일 180석을 확보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재적의원 5분의 3의 결의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를 중지시키고 법안을 통과시키면 된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국회선진화법에 대해 국회를 통과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논란이 발생했다. 2013년 3월 야당의 반대로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자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국회선진화법은 18대 국회까지의 ‘동물국회’의 참상과 세계적인 추태를 방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180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어떤 정책도 법으로 뒷받침할 수 없기 때문에 ‘식물국회’ 나아가서는 ‘무생물국회’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중요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정부·여당으로서는 국회선진화법이 폐지 1순위의 법이다.
하지만 아직 국민들은 동물국회를 조장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폐지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초·재선 의원들의 비율이 과반수에 달하는 20대 국회에서 이 법을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동물국회가 되면 제일 먼저 주먹을 날리고 몸싸움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바로 초·재선의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얼마나 많이 때리고 밀치냐에 따라 충성도가 정해지고 다음 총선의 공천이 달려있다면 아무리 많이 똑똑하고 훌륭한 국회의원이라도 여야 갈등의 최전선에 설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을 다시 재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IV. 지방선거·재보궐선거와 국회의장직 간의 오묘한 관계
2018년 현재 집권 2년차를 맞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산적한 국정현안을 처리하는 것이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법치국가원리 하에서 정부나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거의 대부분의 정책이 법률의 제·개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법안이 처리가 매우 시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국회에서 야당은 국회선진화법을 흔들면서 정부·여당의 중요 정책들에 대해 발목잡기를 할 것이다. 국회선진화법을 폐지하는게 최선이지만 기대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을 활용하는게 최선이다. 그래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자기 당 출신의 국회의장을 배출해야 한다. 야당은 정확히 동일한 이유에서 절대로 국회의장을 여당에게 내주면 안 된다.
여기에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수는 121석, 자유한국당은 118석으로 불과 3석 차이다. 금품수수 사건으로 재판 중인 자유한국당 배덕광의원이 제출한 의원직 사퇴서가 수리된다 해도 4석 차이에 불과하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조원진의원이 복당한다면 다시 3석 차이다.
2018년 1월 30일 현재까지 자천타천으로 더불어민주당에서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20명 정도나 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기 때문에 당선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유한국당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이 2년이나 남은 국회의원직을 버리고 과감하게 지방선거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이 중 몇 명의 현역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버리느냐에 따라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 있어 기호 1번이냐 기호 2번이냐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아직까지 많은 유권자들이 기호 1번이 여당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만일 덜컥 의석수가 모자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번을 받는 경우에는 지방선거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정당과 후보자별 기호가 정해지는 시점은 후보자 등록이 끝나는 5월 25일이다. 이날 오후 6시 후보자 등록이 끝나는 시점에서 다수 의석 등의 기준을 적용해 기호가 배정된다. 여야 모두 현역의원 수를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여당의 경우 먼저 서울은 현직 박원순 시장이 3선에 출마하면 의석수 관리에 문제가 없다. 다른 경쟁자들은 거의 현역이다. 경기도는 아직 여러 변수가 남아있다. 인천시장으로 나서고 있는 박남춘 의원은 현역이다.
세종시는 현직 이춘희 시장이 나서기 때문에 의석수에 변화가 없고, 충남은 현역 양승조 의원과 박수현 전의원의 대결이다. 충북은 오제세 의원과 이시종 시장이 대립하고 있어 오제세 의원이 나서게 되면 한 석이 줄어든다. 강원도는 현직 최문순 시장이 순항 중이다.
영남의 경우 대구에는 김부겸의원(현 행자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현역이 눈에 띄지 않는데 김부겸 의원은 최근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아직 여전히 출마가능성은 있다고 한다. 경북에는 특별히 현역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부산의 경우 최근 현역인 김영춘의원(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나서면 매우 강력한 후보가 되겠지만 현역의원 숫자 관리상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을 선호할 듯하다. 경남과 제주에서는 현역의원이 출마하기가 다양한 이유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여야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후를 대비해 모두 아주 정밀한 의석수의 계산이 필요한데, 선거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우니 우선 현역의원이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경우를 축소하려 할 것이다.
그 다음은 바로 6월 말경 국회의장 선출을 해야 하는데 아마 이때쯤 다시 양당체제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V. 글을 맺으며
국회의장은 국가의전서열 2위이며, 국회를 대표하는 직책이다. 국회의장의 거의 명예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직권상정제도 때문에 때로 역사의 중심에 설 가능성도 있다. 이번 지방자치선거와 재·보궐선거의 결과에 따라 차기 국회의장이 정해질 것이다.
국회의장이 갖고 있는 직권상정권한 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로서의 성격이 잘 나타날 수 있는 훌륭한 의장을 선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SWOT분석
1. Strength(장점)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이 매우 제한되고, 여·야가 타협해야 하는 사안이 많아져서 민주주의를 고양할 수 있게 되었다.
2. Weakness(단점)
국회선진화법에 의해더라도 법률의 규정이 추상적이어서 여전히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이 행사될 여지가 있다.
3. Opportunity(기회)
국회선진화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이 아주 심각하게 논의되었던 것은 한 두 차례에 불과하다. 향후 국회선진화법의 취지에 따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권이 제한될 수 있다.
4. Threat(위기)
집권 중반기로 접어든 정부·여당이 다양한 정책을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하고 직권상정을 통해 법률을 제·개정하려 할 경우 여야의 재격돌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높다. 20대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 선출과정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