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디지털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
2017-12-12 06:00
미래를 예측하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없던 희망도 생긴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이 인간이 하기 어려운 일,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준다. 스마트폰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면 자율주행차가 조용히 내 앞으로 다가온다. 드론이 피자를 배달하고, 아이들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공룡의 생태를 공부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가능하다면 냉동 인간이 되어 20년쯤 뒤에 부활하고 싶다. 한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멋있게 살고 싶다. 그런 세상을 우리는 파라다이스라고 부른다. 계속 이렇게만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완벽한 세상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러나 상식이 있는 일반 사람이라면 그런 파라다이스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 실존하는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 지도자나 철부지 정치가 외에는 없다. 계급과 계층의 문제, 학벌 중심 시스템, 일자리와 실업, 이념과 지역 갈등, 핵발전소와 환경 문제, 남북한 긴장 관계, 불안한 국제 정세 등 열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20~30년 후에 깔끔하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개선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현재로서는 파국이 오지 않길 기도할 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파라다이스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다. 먹고사는 데 큰 걱정이 없고 좀 더 쾌적하고 평화로운 삶이다.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이 가능하고 노동과 휴식이 적절하게 균형 잡힌 생활을 원한다.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면 굳이 도시에 살 이유가 없다. 도시는 자본과 소비의 공간이지 노동과 휴식의 공간이 아니다. 도시에 모여 사는 이유는 자본과 사람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도시에 살아야 일자리도 얻을 수 있고 장사를 해서 먹고살 수도 있다. 기술의 발달로 도시를 떠나서 살아도 별 문제가 없다면 사람들은 살기 원하는 곳,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게 된다.
드론을 이용한 우편물 배송 역시 머지않아 보인다. 전남 고흥에서 출발한 드론이 4㎞ 떨어진 득량도에 소포와 등기 등 실제 우편물을 배송했다. 드론은 8㎏의 우편물을 싣고 50m 상공으로 이륙해 10분 만에 배달을 완료했다. 우정사업본부는 2022년까지 우편물 드론 배송을 상용화하겠다고 밝혔고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무선 통신과 인터넷은 연결됐지만 물리적 유통망은 해상 조건과 사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쉽지 않았던 현실을 감안하면, 드론을 통한 물품 배달은 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섬은 항상 두 가지 의미로 해석돼 왔다. 하나는 파라다이스, 다른 하나는 유배지다. 이 둘을 갈라놓는 것은 자급자족 여부다. 자급자족이 가능하면 섬은 파라다이스가 되고 자급자족이 불가능하면 고독한 유배지가 된다. 유배지를 파라다이스로 바꾸기 위해서는 필요한 모든 것들이 즉시 공급돼야 한다. 지금까지는 바다와 파도 때문에 모든 것이 막혀 있었다. 섬 생활은 고독과 결핍, 불안과 절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필요한 것들이 제때 공급될 수 있다면 섬은 파라다이스로 바뀐다. 전설과 신화 속 섬들이 파라다이스로 묘사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