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치'의 큰 변덕…예산안, 막판까지 롤러코스터

2017-12-05 18:40
잇따라 의총 열어 본회의 연기…합의 원천무효ㆍ정우택 사퇴론 나와
소수 여당 발목 잡는 선진화법ㆍ벼락치기 밀실심사 개선 목소리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는 가운데 정기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자유한국당 의원석이 텅 비어있다.[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ajunews.com]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막판까지 '롤러코스터'를 탔다. 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자유한국당이 오전, 오후, 밤 잇따라 의원총회를 여는 바람에 본회의가 계속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다.

전날 체결한 여야 3당(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국민의당)의 잠정 합의문 중 일부는 ‘유보’ 조항으로 전락했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예산과 관계없는 선거구제 개편을 고리로 동맹군을 형성했지만, ‘반쪽 합의문’에 그친 셈이다.

최전선에 선 한국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예산안 반대 당론을 넘어 합의 ‘원천무효’ 주장이 터져 나왔다. 협상자인 정우택 원내대표는 사퇴론에 휩싸였다. 헛바퀴를 돈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산결산특위)에서 합의하지 못한 쟁점 사안의 결정권을 가져온 여야 원내대표단의 협상력마저 사실상 낙제점을 면키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해묵은 논쟁인 예산안의 ‘졸속·밀실’ 심사의 정상화 없이는 공수만 뒤바뀐 도돌이표 정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소수 여당을 무력화한 국회선진화법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당 “추악한 뒷거래” 반대당론…비교섭단체도 ‘반발’

정부 예산안 처리의 막판 진통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교섭단체 중심의 여야 원내대표 협상단은 명분과 실익을 챙긴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극명하게 갈린다.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39석)이 민주당(121석)과 한국당(116석) 가운데 어느 쪽과 연대 전선을 형성하느냐가 정국 향배의 분수령이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선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힘을 합쳤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당의 명운이 걸린 선거구제 개편이 사실상 빅딜 수단으로 등장했다. 국회 선진화법 적용 이후 처음으로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12월2일)을 넘기자, 선거구제 개편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로 나온 것이다.

이른바 주고받기식 협상인 ‘패키지딜’은 덤이었다. 여야 3당은 최대 쟁점이었던 공무원 증원 수를 한발씩 양보 9475명 선에서 합의했다. 다만 부대 의견으로 2019년 예산안 심의 때 소관 상임위에 보고를 명시,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의 싸움은 1년 후 제2라운드를 거칠 전망이다. 최저임금 인상 보전분인 일자리 안정기금(3조원) 조성에서는 여당이 야당의 요구를 수용했다. 소득세는 정부 원안, 법인세는 과세표준 기준 상향 조정(2000억원→3000억원 초과)에 합의했다.

결과는 ‘강대강(强對强) 구도’의 원점 회군이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직후 공무원 증원과 법인세 인상을 거론하며 “어제 합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같은 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선거구제 개편은 추악한 뒷거래로, 원천 무효”라며 “당력을 총결집해 투쟁하고 응징해 나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야 협상 과정에서 배제된 비교섭단체도 반발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공무원 예산과 일자리 안정기금을 거론하며 “예산안 처리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정의당도 복지예산 축소에 반발하며 ‘유감’을 표했다. 여야 3당 합의에도 예산안을 둘러싼 각 당의 셈법이 고차방정식으로 격상, 애초 이날 오전 11시 본회의 개회는 무산됐다.

실제 예결위 간사인 예결위 간사인 윤후덕 민주당·김도읍 한국당·황주홍 국민의당 의원은 전날 여야 3당 원내대표 합의 후 남은 쟁점을 정리하기 위해 조정소위원회 소소위를 열고 밤늦게까지 회의를 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이 회의장을 나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해묵은 논쟁인 예산안의 ‘졸속·밀실’ 심사의 정상화 없이는 공수만 뒤바뀐 도돌이표 정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소수 여당을 무력화한 국회선진화법의 개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소수 여당, 선진화법에 무기력…예산심사 비밀주의도 논란

결국 이들은 이날 오전 9시께 다시 만나 혁신 읍·면·동 사업 예산(205억원) 전액 삭감,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사업(50억원)도 30억원 삭감하는 선에서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예결위에서 계수조정 작업이 끝나자 곧바로 기획재정부가 전산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해당 작업이 통상 8~9시간 걸리는 탓에 11시로 예정된 본회의에 수정된 예산안이 상정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예정된 본회의를 열고 의원들께 양해를 구한 후 곧바로 정회를 선포했다.

개선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초치기 밀실심사’의 근절이다. 예산안 심사의 핵심인 계수조정은 예산특위 예산안조정소위 보류안건 심사 소위(소소위)에서 비공개로 진행한다. 이는 모든 위원회의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는 ‘헌법’과 ‘국회법’의 예외 지대다. 400조원을 웃도는 ‘초슈퍼예산’을 30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매년 바뀌는 여야 예결위원이 심사하는 것도 문제다. ‘예결위 상설화’가 아닌 부실·날림 심사의 근본적 원인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한 물리적 충돌 방지차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의 ‘예산안 자동부의제’도 개선 대상이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소수 여당은 이 제도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했다. 선거구제 개편 등 빅딜도 소수 여당의 과반 확보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쟁점법안의 의결 정족수 재적 의원 ‘5분의 3’(180석) 이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 중 91건이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상법 개정안 등의 처리에 험로가 예상된다.

최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나라살림과 직결한 예산안이 정치 논리로 휘둘려선 안 된다”라며 “각 당이 국민 중심이 아닌 정파의 이해관계자로 전락할 경우 국민적 역풍이 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