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인사이트] ‘휠체어’ 눈높이로 세상 보기
2017-11-09 07:49
“엄마, 나 리프트 타기 싫어. 엘리베이터는 여기에는 없는 거지, 그렇지?”
휠체어 탄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면 어른이고 아이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오지랖 넘치게 ‘어쩌다 다쳤대?’라고 물어보는 어르신들도 있다. 지하철이 조금 붐비기라도 하면 ‘집에나 있지 뭐 하러 돌아다닌대?’라는 질문 아닌 질문을 듣기도 한다. 이런 질문에 몇 번 마주치면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말을 거는 게 두려워진다. 우리 아이가 무서워하는 휠체어용 리프트는 움직일 때 ‘엘리제를 위하여’ 같은 음악소리가 온갖 시선을 집중시킨다. 리프트가 움직이는 모습을 놀이기구 타는 걸 보듯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리프트에서 휠체어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과는 또 다른 불편함이다. 이런 시선을 마주하면 우리 딸처럼 휠체어 리프트를 타는 게 두려워진다.
우리 아이는 소아암에서 회복한 후 하반신마비를 얻었다. 엄마인 나는 5살부터 휠체어를 타야 했던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도로와 건물 입구의 턱, 엘리베이터 없는 지하철역, 휠체어가 탈 수 없는 버스가 아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롭게 얻은 ‘휠체어 눈높이의 눈’을 통해 장애를 나쁘거나 불쌍하게 보는 시선에 대한 불편함도 느끼게 됐다. 친척집에 가면 “언제 낫는대?” “언젠가는 나을 수 있겠지?”라는 질문도 자주 들었다. 장애는 낫는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그 때 느꼈다. 장애를 바람직하지 않고, 나쁘고 극복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시선이 사실은 폭력적이라는 것을.
얼마 전 우리 협동조합에서 제작하는 휠체어 환승지도 리서치를 위해 노원역에서 휠체어 이용하시는 분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 앞으로 새치기를 해서 엘리베이터를 탄 이 어르신은 “요즘은 장애인이 대통령보다 더 대우받아. 백화점 주차장에 장애인 구역이 텅텅 비어 있어도 못 대게 해”라고 말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의 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인식이다. 장애인 주차구역은 휠체어를 타고 내려야 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비장애인 주차공간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장애인 주차구역은 항상 장애인 주차용으로 비워 놓아야 한다. 에스컬레이터나 계단으로 오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엘리베이터 말고는 이동 수단이 없는 휠체어나 유모차에게 먼저 양보를 해 달라는 안내문도 그런 의미이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들이 대중교통 이용권을 보장해 달라며 30년 전 시위를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우리나라 장애인 숫자는 250만명. 인구의 약 5%다. 등록 장애인만 이 정도이며, 병이나 노환, 치매 등으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사고나 질병으로 언제든 장애를 입을 수 있는 예비 장애인이다. 장애는 성별이나 피부색처럼 그저 다른 것이다. 성별이나 피부색에 근거해 차별하는 게 부당한 것처럼 장애를 기반으로 그 사람을 열등하게 판단하는 것도 부당하다. 우리 아이는 걷는 방식이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를 뿐이다.
휠체어 환승 지도를 만들면서 일본의 한 도시디자인 교수님에게 격려 메시지를 받았다. “힘드시더라도 따님을 데리고 많이 돌아다니세요. 휠체어를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존할지 알려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딸을 데리고 지하철로, 버스로 외출하려고 한다. 걷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