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욱의 음악이야기]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과 정바비

2017-11-01 05:00

[사진=정병욱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지난 8월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인 이석원의 돌연 은퇴 선언으로 한국 인디음악을 대표하는 이름이자 얼굴이었던 언니네 이발관은 완전히 무대에서 퇴장했다. 앞서 6월 발표된 6집 ‘홀로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앨범”이라는 예고가 있었기에 예상할 수 있는 수순이었지만 혹시나 했던 이들의 희망의 끈마저 완전히 끊어지고 말았다.

지난달 24일엔 밴드 '줄리아 하트'의 6집이 발표됐다. 줄리아 하트의 프론트맨 정바비(정대욱)가 언니네 이발관 초창기 정규멤버였던 사실이나 두 밴드 모두 같은 해 6집을 발매한 채 한 팀은 사라지고 다른 한 팀은 남게 된 것을 생각하며 두 사람의 팬이었던 나는 만감이 교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석원과 정바비가 함께했던 언니네 이발관의 데뷔반 ‘비둘기는 하늘의 쥐’는 1996년 발표됐다. 밴드 결성 당시 이석원은 기타 코드 하나 제대로 잡을 줄 모르는 문외한이었고, 다른 멤버 역시 악기 실력이 시원찮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예민한 감수성과 진솔한 표현, 투박하지만 의미 있는 장르적 시도들로 역사에 남았다. 대한민국 모던 록의 효시 혹은 동시대의 영미 얼터너티브 록을 한국에 도입한 최초 사례로 자주 언급됐고, 당대 움트기 시작했던 홍대 앞 인디신이 낳은 최고의 성과로까지 평가 받았다.

3년 뒤 발매한 2집 역시 당시의 상업적 실패와 무관하게 명반으로 추앙 받은 것을 생각하면 그 둘의 조합은 꽤나 괜찮았던 셈이다. 그러나 2집 이후 정바비가 언니네 이발관을 탈퇴하면서 두 사람의 협업은 끝을 맺는다. 이석원은 언니네 이발관 활동과 자신의 글을 통해, 정바비 역시 줄리아 하트·가을방학에서의 음악과 작가로서의 활동을 통해 같은 듯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의 활동은 더 넓은 세상과의 만남, 그리고 온전한 자기 세계의 구축으로 요약된다. 정바비가 떠난 뒤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도 했던 이석원은 초기 두 음반과 다른 시도와 사운드로 돌아왔고, 이는 일부 평론가들의 볼멘소리를 듣게 한 대신 더 많은 대중과의 소통의 문을 열었다. 2004년 발매된 4집의 경우 여전히 인디밴드 딱지가 붙어 있던 언니네 이발관의 타이틀 ‘순간을 믿어요’가 지상파 가요순위 프로그램에서 조성모와 세븐 같은 주류 가수들과 수위에서 경쟁했을 정도이다.

반대로 홀로 선 정바비는 자기 세계 구축이 우선이었다. 줄리아 하트로 선보인 정바비의 보컬은 고왔던 이석원의 목소리 못지 않게 여리지만 부드러운 힘이 있었고, 가사는 사춘기 소년, 소녀보다 더 풋풋하고 달콤했다. 보컬과 가사와 달리 의외로 헤비한 밴드 사운드, 매혹적인 기타 톤은 그 시기 줄리아 하트만이 자랑하는 반전 매력 중 하나였다. 줄리아 하트의 1집과 2집은 일찌감치 절판됐고 재발매반 역시 성공하는 등 언니네 이발관으로부터 독립한 정바비만의 세계는 삽시간에 형태를 갖추었다.

시작부터 센세이셔널했던 언니네 이발관의 정점은 이상적인 아마추어리즘으로 인식됐던 이석원의 감수성이 더 세련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변화한 5집 시기에 찾아온다. 이미 성공한 뮤지션이었던 이석원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우울한 자각으로 비롯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갈수록 그 완성도에 집착한 완벽주의자로서의 자신은 물론이고 앨범을 기다리던 팬들의 마음을 고생(숱한 발매 연기)시키며 발표됐고, 결국 2009년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등 3개 부문을 수상하는 등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음반의 주제와 서사를 담은 이석원의 산문집 ‘가장 보통의 존재’는 발간 당해는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으며, 그에게 베스트셀러 작가의 호칭까지 부여했다.

이 시기 정바비는 거꾸로 과거 이석원이 취업을 했던 것처럼 음악 활동 대신 외무고시 준비를 하다가, 2009년 돌연 가을방학으로 돌아와 줄리아 하트 시절 이상의 인기를 끌게 된다. 시점은 조금 엇갈렸지만 각자 잠깐의 외도가 도리어 추후 대중적 성공을 이끌었던 셈이다. 줄리아 하트 3집이 밴드 커리어에서 가장 우울한 음반이라는 평을 받거나 반대로 4집이 가장 밝고 장난스러웠던 사실 또한 음악적으로 과도기적이라는 평을 받았던 언니네 이발관의 3집, 4집 시기를 연상시켜 두 사람을 더욱 연결짓게 한다.
 

우연이었든 필연이었든 한 뿌리로부터 출발한 이석원과 정바비는 모던 록과 기타 팝이라는 공통 분모 아래, 혹은 일상과 내면에 바투 다가선 감성을 글과 가사로 옮기는 작가적 뮤지션이라는 이름 아래 닮은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2017년 한 사람은 음악가로서의 인생으로부터 무기한 이별했고 다른 한 사람은 남았다.

둘 모두 긴 시간 잔뼈가 굵어온 베테랑인 만큼 스쳐간 인연이 수도 없이 많기에 굳이 함께 엮는 것이 괜한 자의적 욕심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 만큼 두 사람을 따로 또 같이 응원했기에, 신보로 돌아온 정바비의 여전히 세심한 감성을 지켜보며 이석원의 이른 퇴장을 더욱 아쉬워할 수밖에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