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가트너의 미래 예측보다 더 위험한 것
2017-10-17 05:00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정보기술 시장 조사 기관 가트너가 다음 연도에 유행할 신기술들을 예측 발표한다. 올해는 지난 12일 '2018년 이후 주목해야 할 10대 디지털 주요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금년에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기술이나 상품에 대한 예측보다 향후 디지털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포괄적 전망을 발표했다. 이 중 흥미로운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2020년 인공지능의 가짜 콘텐츠 제작 능력이 디지털 불신을 조장한다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2022년 사람들은 실제 정보보다 더 많은 허위정보를 소비한다는 내용이다. 둘 다 정보에 관한 이야기고 둘 다 부정적 전망이다.
디지털 네트워크가 확장될수록 정보는 늘어나고 속도는 빨라진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관여하면서 정보의 제작·유통이 더 빨라지게 됐다. 인공지능에 의한 콘텐츠 제작은 이미 활용되고 있다. 로봇 저널리즘이 그 한 사례다. 로봇 저널리즘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자동으로 작성되는 기사 또는 이런 일련의 흐름을 말한다.
로봇 저널리즘의 경우 콘텐츠가 잘못 만들어져도 크게 우려되지는 않는다. 기사는 인공지능이 작성하지만 출고되는 과정에서 데스크의 판단을 거치고, 최종적으로는 신문사라는 신뢰할 만한 기관에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그럴 듯한 기사들이다. 가트너가 우려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기사들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수 있고, 사람들은 그런 기사에 속을 수 있다. 인공지능의 ‘위조 현실’ 또는 가짜 콘텐츠 제작 능력이 이를 알아볼 수 능력을 뛰어넘어 디지털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을 조장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이 그의 전망 중 하나다.
인공지능의 가짜 콘텐츠 제작 능력이 디지털 불신을 조장한다는 전망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실제 정보보다 더 많은 허위정보를 소비한다는 내용과 연결된다. 그러나 가트너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이런 가능성은 계속 존재해 왔다. 인공지능에 의한 콘텐츠 제작 가능성이 추가됐다는 사실은 중요하지만, 인공지능 등장과 상관없이 정보는 계속 증가했고 가짜 정보 역시 우리 주변에 늘 있어 왔다.
문제는 가짜 뉴스에 신념이 더해지는 경우다. 가짜 뉴스에 특정 신념이 더해지면 그 순간부터 팩트는 무시되고 신념 자체가 기사를 유통시킨다. 이제 기사는 가짜 뉴스에서 중요한 뉴스로 변하고 사람들은 이 기사를 신봉하게 된다.
최근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이 사회적으로 뜨겁다. MBC 출신 이상호 기자가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발단이 됐다. 이 기자는 이 영화를 통해 김광석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부인 서해순에 의한 타살일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는 자기 나름의 합리적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닐 경우 파장은 클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인격적·사회적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광석과 이상호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이미 하나의 '진실'이 되었다. 최종 결과에 상관없이 진짜 뉴스가 돼 유통되고 있다.
가짜 뉴스 자체는 무섭지도 않고 피해가 크지도 않다. 항상 있어 왔고 어느 정도 필요악이기도 하다. 우려되는 것은 사람들의 확증편향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네트워크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정보 유통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모바일이 일반화되면서 사람들은 작은 화면으로 특정 관심 분야에 집중해 뉴스를 소비한다. 처음 클릭한 기사와 유사한 내용이 계속 다음 화면에 등장한다. 보고 싶은 기사를 계속 소비하면서 사람들은 쉽게 특정 성향의 기사에 몰입하게 된다. 여기에 신념이 더해지면서 뉴스는 '믿음'이 된다.
이런 불길한 전망에 비하면 가짜 뉴스에 대한 가트너의 우려는 오히려 가볍다는 생각까지 든다. 미래는 어느 정도 의도한 대로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의 신념을 제어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