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구글 번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2017-10-09 20:00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사진=김홍열 초빙 논설위원 · 정보사회학 박사]


구글 번역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외국어, 특히 영어를 배우는 데 소요되는 시간과 돈·노력을 대폭 절약할 수 있다면, 또는 약간의 투자로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혁명은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는 유럽 문화권 사람들에게도 해당되지만 오랜 기간 중국을 제외한 외부 문화와 단절되어 폐쇄적으로 살아온 우리들에게는 더 절실하게 들린다. 사실상 우리는 영어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 한글도 제대로 알기 전에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초·중·고·대학을 거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간단한 영어 단어는 이미 외래어가 되었고,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라 꽤 많은 영어 단어 역시 우리 일상어가 되었다.

학생들 교과 과정에 영어 습득을 위한 많은 시간이 포함된 이유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소위 서구 선진국의 문물을 이해하고 수용하기 위해서다. 구한말 이전 중국의 문물을 수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한자를 알아야 했던 것처럼 해방 이후 근대화 물결 속에서 선진 자본주의 미국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위해서 영어가 꼭 필요했다. 여기까지는 쉽게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영어가 교과 과정에 필수 과목이 되고 상급학교 진학, 취업, 승진, 평가 등 사실상 모든 과정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된다. 하나의 수단으로 영어를 생각하던 처음 의도와는 달리 이제 영어 자체가 목적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섬겨야 하는 신으로 등극한다.

문제는 이 신에게 바쳐야 하는 공물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 이 귀신은 바쳐도 바쳐도 만족을 모른다. 신도들만 계속 자괴감에 빠져든다. 일부 열성 신도야 영어에 능통하지만 대부분 평신도들은 그저 속절없이 돈과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도 지금까지는 솔루션이 없었다. 문법이나 독해 위주에서 말하고 쓰기 위주로 교육 과정을 바꾸는 것이 전부였다.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 번역 솔루션은 혁명의 작은 불씨로 등장한다. 번역 솔루션이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번역 솔루션에 관심을 갖고 이 솔루션이 혁명의 작은 불씨가 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게 된 시점은 최근 몇 년 사이다.

작은 불씨가 대화재로 이어질지, 잔가지 몇 개 태우고 말지 의견이 분분하다. 번역 솔루션이 실제로 활용 가능한지에 대한 논의는 계속 있어왔다. 부정적 의견은 주로 문학 전공자들에게서 나왔다. 예전보다 정교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으로 완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반대 의견은 최근 방한한 구글 번역 최고 담당자 마이크 슈스터의 언급으로 힘을 얻고 있다. 조선비즈 보도에 따르면 그는 IT 관련 모임에서 “사람의 대화는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언어의 의미나 소통 중에 사용하는 표정, 제스처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번역기가 완벽하게 사람을 대체하는 시점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슈스터는 언어는 도구 이상이며, 언어 안에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철학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마이크 슈스터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동의가 결코 구글 번역의 중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구글은 계속 투자를 하고 있고 결과물은 지속적으로 좋아지고 있다. 구글 번역의 목적은 텍스트에 있지 콘텍스트에 있지 않다. 콘텍스트는 해석하는 개인에 따라 달라진다. 텍스트가 연대기라고 한다면 콘텍스트는 역사 해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텍스트고 연대기다. 적어도 텍스트는 민주적으로 공유되어야 한다. 텍스트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콘텍스트는 늘 상상으로만 존재한다.

언어는 수단 이상이라는 생각, 언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은 언어 사용 동물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 유일한 영적 존재라는 믿음과 동일하다. 이 영적 존재가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에 철학적·미학적·주술적 의미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강력한 신앙이 있다 보니 일반 백성들은 특별한 언어를 사용하는 권력자들과 사제 집단의 권위에 늘 시달려왔다. 말씀의 해석, 번역, 통역 역시 늘 선택받은 소수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어를 여러 소통 수단의 하나로 이해하고 단어 하나에 적합한 하나의 의미를 부여해 누구라도 쉽게 통번역을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언어의 주체는 처음으로 일반 대중이 된다.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신이 되려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바벨탑을 기획했지만 결국 언어의 분리로 귀결되고 소통의 부재로 연결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순간 인간의 언어가 태어난다. 신에 의한 하나의 언어 대신 인간들에 의한 수많은 언어가 탄생되면서 인간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표현 방식을 획득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언어가 사제의 언어, 철학자의 언어로만 계속 존재해왔다. 구글 번역의 사회적 의미가 여기에 있다.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집단 지성과 전문 프로그래머들에 의해 번역 솔루션의 성능은 더 좋아진다. 모든 언어가 번역되는 순간 인간의 언어 사용 능력은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된다. 단어 몇 개로 이해하던 세계와 수많은 언어로 구성된 세계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구글 번역의 최종 목적지는 번역에서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