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사라질 직업, 생겨날 직업, 계속 유효한 직업
2017-09-11 20:00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14
사라질 직업, 생겨날 직업, 계속 유효한 직업
미디어에 미래학자 또는 관련 기관들이 미래에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겨날 직업 등에 대해 발표하거나 관련 내용 출간 소식이 들리면 바로 큰 사회 이슈가 된다. 자극적 제목과 충격적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지금 직업 대부분 사라져', '새로 생겨날 직업군 보니 충격'. 이런 과격한 제목들이 많다. 구체적으로 몇 년 후에는 일자리 수백만개가 사라지고 또 그 정도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주장들이 여러 곳에서 계속 나오면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긴장을 하게 된다. 학교 교과 내용도 바꾸고 성인 대상 재교육 시스템도 만들고 복지 정책도 수정해야 한다. 물론 필요한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예측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미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토머스 프레이의 경우에는 첨단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일종의 기술결정론적 시각을 보여준다. 기술의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에는 이런 관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수용된다. 적절한 사례들도 있다. 토머스 프레이가 언급한 직업 중 우편배달원, 경비원, 물류창고 직원, 소매 점원 등은 거의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업디자인, 노동조합, 언론 뉴스 기자, 저자 및 소설가들이 소멸된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미래의 직업이 어느 경우에나 기술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는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도 성직은 여전히 중요한 직업이다. 사주, 관상, 손금, 궁합 등을 실질적으로 믿는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일정 비용을 지출한다. MOOC(온라인 공개수업)가 활성화돼도 교사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미래의 직업을 예측할 때 기술 이외에 두 가지 중요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국가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에 포섭된 인간의 욕망이다. 미래에도 국가는 소멸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소멸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 예측이다. 자본주의 역시 조금씩 변화를 겪겠지만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체제로 변화될 가능성은 상상하기 힘들다.
두 번째는 인간의 욕망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를 구동시키는 또는 자본주의에 포섭된 인간 욕망에 대한 합리적 이해다.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지출하는 경우는 자신의 욕망이 충족 가능하다고 판단할 때다. 아프고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간들이 일정 비용으로 위로를 받고 싶은 욕구는 소멸되지 않는다. 기술은 이런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줄 수 없다. 종교, 예술, 오락, 여행, 성적 관심, 전원 생활 등은 계속 유효하다. 음악, 영화, 예능, TV드라마 등은 미래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요리사 역시 미래에도 중요한 직업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레시피를 몰라서 식당에 가는 것이 아니다. 이전과는 다른 색다른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모든 사람들에게는 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더 편하게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사람들은 기술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기술이 좋다고 해서 항상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사장된 신기술들도 많다. 기술은 인간 본질의 일부분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물질로 만들어진 아날로그 구성체이고, 다양한 욕망의 집합체이며, 새로운 것을 꿈꾸는 창의적 존재이다. 국가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존재로서의 정체성도 있고 힘들어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직업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 전망, 사람들의 욕망 그리고 여기에 기술이 결합될 때 만들어지고 확산된다. 사라질 직업, 생겨날 직업, 계속 유효한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할 때 미래학자들의 의견을 너무 심각하게 수용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