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칼럼]사드배치와 환구시보

2017-09-14 18:00

[칼럼니스트 김재현(상하이교통대금융학 박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게다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사설에서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은 김치를 먹고 멍청해진 게 아니냐”는 표현을 사용한 후 중국에 대한 감정이 더 악화되고 있다.

안 그래도 북한제재에 미온적인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데, 한술 더 뜬 격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반응을 언급할 때 우리 언론에서 가장 자주 언급하는 매체는 환구시보다.

환구시보는 어떤 매체일까? 우리 언론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서 발행된다는 이유로 환구시보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환구시보는 옐로 저널리즘의 성격이 짙은 민족주의 매체다. 재밌는 것은 연예나 스포츠가 아니라 국제정치를 이용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한다는 점이다.

왜 국제정치일까? 중국신문에는 정치면이 없다. 기사 중에도 중국 정부의 행정에 관한 내용은 있지만, 중국 정치를 다른 기사는 없다.

왜냐면 중국신문은 모두 중국 공산당 산하 선전부의 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신문사 자체가 전부 국유기업이다. 중국 정부 아니면 공산당 위원회가 신문을 소유하고 있다. 중국에서 언론은 선전·선동의 도구인 동시에 통제의 대상이다.

중국인 중에는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다.

필자가 중국에서 지낼 때, 날마다 중국 TV에서 방영하는 국제정치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이렇게 중국인들은 국제정치에 관심이 많은 지 궁금했다. 베이징 택시기사들은 국제정치를 논하면서 달변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중국인이 국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중국이 북한, 러시아, 인도, 베트남 등 14개 국가와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대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중국인들은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중국 정치를 토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들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겠는가. 그런데 중국 정부는 보통사람이 국내 정치를 토론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국에서 정치는 완전히 ‘그들만의 리그’다.

국내 정치를 토론할 수 없으니 굳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려면 중국인들은 다른 나라의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국제정치라는 틈새시장이 생겼고 이 틈새시장을 가장 잘 파고든 매체가 환구시보다. 발행부수도 100만부가 넘는다. 지방지가 많은 중국에서 판매부수 100만부는 상위 10위 안에 드는 수량이다.

타블로이드판으로 16면이 발행되는 환구시보는 심층분석 기사보다 외국언론의 기사를 소개하는 내용이 훨씬 많다. 아마 직접 보면 벼룩시장 같은 무가지처럼 저렴해 보이는 외형에 놀랄 것이다.

환구시보는 전 세계 각지에 나가있는 인민일보 특파원 네트워크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매체에 비해 경쟁우위가 있다.

다른 매체와는 달리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매체라는 점을 이용해 민감한 국제정치도 자유롭게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도 자주 나온다. 한국에 관심 있는 중국인 독자들이 적잖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5면에 사설이 실린다. 바로 이 사설이 외국언론이 환구시보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다. 중국 정부의 의중을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실 환구시보 논조가 반드시 중국 정부의 의중을 대변한다고는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환구시보는 중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신문이라서 가끔씩 도를 지나칠 때가 있다. 워낙 중국 정부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드니까 환구시보를 참고하지만, 환구시보의 사설에 지나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중국 지식인 중에는 북한에 비판적인 사람도 많다. 중국이 북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환구시보 외에 중국과의 접촉면을 늘린 필요가 있다.

아, 그리고 김치 얘기는 너무 개의치 말자. 말은 말하는 사람의 수준을 드러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