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칼럼] 메릴랜드대학 연설 사건으로 살펴본 中민족주의
2017-06-01 11:00
30년 이상 지속된 경이적인 경제성장에 힘입어 중국의 대외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기조가 유지됐는데, 시진핑(習近平) 시대 진입 후에는 대외정책 기조가 할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강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반대 역시 직설적이다. 중국 외부에서는 중국의 대외 영향력이 증가하면서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사드 배치 문제에서 본 것처럼 중국 정부의 제재 정책이 중국인들의 민족감정과 맞물린다면 폭발력이 제곱 이상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민족주의를 살펴볼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지난달 21일 중국인 유학생 양수핑(楊舒平)이 미국 메릴랜드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한 연설을 두고 중국에서는 한동안 소동이 났다. 양수핑이 모국인 중국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지금 우리 나라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중국의 대기오염과 큰 관계가 있다.
중국 네티즌들이 비난하는 이유는 양수핑의 고향인 쿤밍(昆明)의 공기는 중국에서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쿤밍이 위치한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은 자연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관광지다. 게다가 양수핑이 언급한 2012년에는 지금보다 공기질이 더 좋았다. 쿤밍시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서 중국의 어떤 지역보다도 쿤밍의 공기가 좋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양수핑이 중국의 공기질에 대해서 약간의 과장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이것은 연설 서두에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 농반진반으로 한 이야기이다. 양수핑이 공기를 빌려서 정말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중국과 미국에서의 자유의 차이였다. 곧이어 양수핑은 메릴랜드 대학에서 또 다른 신선한 공기를 느꼈는데 바로 ‘언론의 자유(free speech)’라고 말했다. 결국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없다고 대놓고 말하기는 부담스러워서 공기를 빌어서 중국과 미국의 차이를 비교한 것이다.
중국 민족주의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중국 국제정치학자인 정융녠(鄭永年)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미래 30년'이라는 저서에서 중국 민족주의 세력을 크게 네 개 집단으로 구분했다.
첫째 집단은 서구에 대해 비판적이며 이념적으로도 사회주의에 편향되어 있는 전통적인 좌파다. 둘째 집단은 국가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수세력이다. 이들에게 국가이익은 경제력뿐 아니라 문화 같은 소프트 파워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민족주의 역시 국가이익을 대표하는 소프트 파워 중 하나다.
셋째 집단은 감정적인 민족주의 세력이다. 20~30대 젊은 층이 대다수인 이들은 인터넷을 이용해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민족주의 세력이기도 하다. 마지막 집단은 민족주의의 이해관계자들로서 이들은 문화, 방송 등 여러 분야에서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직접적인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에게 있어 민족주의는 이념이나 의식형태라기보다는 이익 획득을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이번 메릴랜드대학 연설사건 역시 민족주의의 이해관계자들이 감정적인 민족주의 추종자들인 20~30대를 자극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드배치 문제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보수세력이 먼저 경제 보복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뒤이어 민족주의의 이해관계자들이 감정적인 민족주의 세력을 자극하면서 파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중국의 반한 감정과 민족주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중국 내부의 민족주의 세력과 여론형성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