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서류 남기고…11일 만에 찾은 캐비닛…靑 ‘이사 미스터리’

2017-07-18 18:43
전문가들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 14일 청와대가 공개한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로 추정되는 문건.[사진=청와대 제공]


최신형 기자 =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이사(移徙)를 오갈때 당연히 하는 일이 있다. 집을 비워주고 이사를 나가는 이들은 집안 구석구석 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살피고 또 살핀다. 새 보금자리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이삿짐을 풀어놓고 싱크대, 장롱, 책장, 캐비닛 등 수납공간을 꼼꼼히 채운다. 그 과정에서 이전 거주자가 버리거나 놓고간 물건을 발견하면 곧바로 처리한다. 누구나 이렇게 이사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권력의 '심장'인 청와대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지원 방안이 담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캐비닛 문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엄청난 기밀이 담긴 문건을 캐비닛에 방치한채 청와대를 비웠고,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에 들어온지 거의 두 달이 다 된 지난 3일 이 문서뭉치를 발견했다. 게다가 발견한 지 11일이나 지난 시점(지난 14일)에 공개했다.

‘민정수석실 캐비닛 문건’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국면에서 인수인계 없이 정권 간 바통터치를 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통상적으로 대통령기록물의 대통령기록관 이관엔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그 기간이 2개월로 3분의1가량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전 정권 문건이 현 정권 청와대에 남아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18일 본지와 통화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핵심 쟁점은 공개된 문건의 ‘대통령기록물 여부’와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인정받느냐다.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입증의 문을 여는 ‘스모킹 건’(특정 행위나 가설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메모, 대통령기록물 아냐”…지정·비밀기록물 檢이관 불법

헌법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두 차례에 걸쳐 공개된 문건의 형태 및 성격이다. 청와대가 지난 14일 공개한 민정수석실 문건 중 공개된 부분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자필 메모 등 ‘생산이 완성되지 않은’ 문서였다.

하지만 전날(17일) 공개한 1361건의 문건은 전 정권의 정책조정수석실에서 작성한 ‘완성된 문서’였다. 청와대가 문건의 내용은 함구한 채 제목만 공개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도 “일부는 기획비서관 재임 시절 내가 작성한 게 맞다”고 밝혔다.

백원기 대한법학교수회장(인천대 법학과)은 “청와대가 두 번째 공개한 것은 공식 문서다. 대통령이 날인·인지했으면 대통령기록물법상 완전한 문서”라며 “대통령에게 가기 전까지 실무선에서 검토 중이면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아니라서 공개 여부는 문제가 안 된다”고 밝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메모 자체는 대통령기록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반인 아닌 대통령기록물을 특별검사(특검) 등에 이관하는 것은 불법이다.

대통령기록물법(제16조1항)에 따르면 ‘공개’를 원칙으로 하되, 공공기관 정보공개법 제9조1항에 해당(국가 이익 해소 등)하면 비공개할 수 있다. 비밀기록물은 차기 대통령 등 비밀 취급 인가권자들이 열람할 수 있고, 지정기록물은 최장 30년까지 열람을 제한한다. 일반 기록물은 일반인 열람이 가능하다.

‘청와대 생산 문건은 비밀 여부를 떠나 대통령기록물’이라는 야권의 주장도, ‘자료에 비밀 표기를 해놓지 않아 대통령지정기록물은 아니다’라는 청와대 주장도 법률적으로 맞는 해석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관한 지정기록물의 목록을 비공개 처리했다. 이번에 발견한 문건과의 목록 대조가 쉽지 않아 지정기록물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얘기다. 강신업(법무법인 하나) 변호사도 “지정기록물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추후 논란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전문증거능력 배제 원칙…작성 주체 등 변수

문건의 대통령기록물 여부는 재판의 ‘전문증거능력’(원진술자가 공판기일 또는 심문기일에 행한 진술 이외의 진술·정황증거)과 맞물린 문제다. 청와대가 특검으로 이관한 문건이 공문서로 인정되면, 재판의 증거능력을 갖게 된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회장 등 삼성 측에 공개 가능 여부를 걸고 이의를 제기할 경우 법리 다툼을 놓고 수 싸움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김 전 수석의 자필 메모 등 ‘완성되지 않은 문건’의 전문증거능력이다. 우리의 형사소송법은 ‘영미법의 전문증거능력 배제 원칙’을 따른다. 메모의 작성 주체가 불분명한 전문증거능력의 경우 반대 심문권이 보장되지 않는 데다, ‘특신상태’(특별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했다고 보기 쉽지 않아서다.

한 법률 전문가는 “사안별로 따져봐야 한다”라며 “특정인이 윗선 지시를 메모장에 적었을 경우 착오나 왜곡 상태에서 적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박 전 대통령의 지시라고 오인하고 김영한·우병우 전 수석이 메모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백 회장은 “두 번째 문건 공개 중 홍 실장처럼 작성 주체가 명확할 땐 증거능력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불법적 취득이 아니라면 재판의 증거능력이 된다(이장희 창원대 법학과 교수)는 견해도 있다.

마지막 쟁점은 전문증거가 다수일 때 직접증거에 준하는 법률적 효과를 줄 수 있느냐다. 한 교수를 비롯해 다수가 “정황증거가 많으면 유죄 입증은 수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전문가들은 청와대 캐비닛 문건 공개가 문재인 정부 초반 정국을 주도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 전 수석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