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 신중해야] 재계 "상법개정안, 기업 옥좨…재계 투자·고용마저 불확실"
2017-02-23 18:30
아주경제 문지훈 기자 = 글로벌 경기 침체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특검 수사 등 국내외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계가 상법개정안이라는 또 하나의 파고를 만났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라는 위기 속에서 대내적으로는 국정 농단 사태에 이어 상법개정안 추진으로 기업들은 사상 초유의 '사면초가' 상황에 휩싸였다.
상법개정안은 최순실 게이트로 불거진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중 전자투표제는 주주들이 주주총회 현장에 가지 않아도 온라인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이며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손해를 발생시킬 경우 모회사 주주가 해당 이사를 추궁할 수 있도록 대표소송제기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의 경우 감사위원 선임 시 다른 이사들과 분리해 선출하고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 주주가 선임할 이사의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받아 후보자 1명이나 여러 명에 집중 투표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달 초 국회에 제출한 리포트를 통해 "개정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강력한 규제들,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조항들을 다수 담고 있다"며 "이대로 입법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힘든 나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기업들은 대내외적으로 여러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법개정안 통과 시 경영자율성마저 뺏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상법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선출제의 경우 최대 주주만 특수관계인 지분을 포함해 3%로 제한 받지만 2대 주주 등은 의결권 제한이 없어 경영권이 휘둘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 역시 외국 자본의 이사회 진입이 쉬워지는 만큼 경영권이 침해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우려하고 있다.
경영권 침해뿐만 아니라 기업에 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뒤 철수하는 이른바 '먹튀'도 우려 사항 중 하나로 꼽힌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칼 아이칸과 헤지펀드 소버린 등이 꼽힌다. 2003년 소버린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이후 SK 주식을 매입해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경영진의 퇴진을 요구하다 시세차익으로 1조원을 거둬들인 뒤 철수한 바 있다.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칼 아이칸의 경우 2006년 KT&G 주식을 매입해 2대 주주로 등극한 뒤 경영권 분쟁을 벌이다 매도차익을 실현, 철수했다.
무엇보다 재계에서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기업 총수들이 수사 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상법개정안 통과 시 '엎친 데 덮진 격'으로 경영 혼란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말 그대로 패닉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며 "이는 투자 및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현대자동차그룹과 SK그룹, LG그룹을 제외하고는 상당수 기업들이 올해 투자 및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에서 더 이상 기업을 운영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푸념도 나온다. 상당수 기업들이 생산성 효율화를 위해 해외에 공장을 신설하는 상황인데 규제가 더 심해지면 국내에서 기업 활동을 할 요인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상법개정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보장하는 논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경영권 방어수단을 보장하는 제도 없이는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오히려 확대하고 기업가 정신도 후퇴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