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영원한 경제인'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2017-02-03 07:00
강봉균(康奉均)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향년 74세로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3일 발인을 거쳐 이제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그를 추억(追憶)한다.
고인(故人)은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 상대로 진학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후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한양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제6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기획원에서 차관보까지 승진한 후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차관, 경제기획원 차관, 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장, 정보통신부 장관을 차례로 역임한 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정책기획수석, 경제수석, 재정경제부 장관을 차례로 역임했다.
이같은 고인의 행장(行狀)은 그가 지난해 편찬위원장으로 참여한 <코리안 미러클 4 :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에 나온 것을 인용한 것이다. 스스로 편찬한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가장 정확한 고인의 행장이라고 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고인의 육성을 통해 그를 ‘영원한 경제인’으로 다시 조명하려 한다.
고인은 외환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재벌 문제를 꼽았다. 고인은 “한국 외환위기의 성격은 복합적이었습니다. 국제수지 자본계정의 위기였으며 외국자본의 단기유출 때문에 발생한 유동성 위기의 성격이기도 했지만 근본에는 재벌대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와 이에 따른 재무구조 약화와 부실화가 원인이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고인은 지난해 <코리안 미러클 4>를 펴내면서도 재벌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최근 롯데그룹의 친족 간 경영권 분쟁사태를 초래한 상황은 아직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진적 기업지배구조의 확립과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한 법적, 제도적 규제감독 기능이 강화되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주문했다.
고인은 1998년 청와대 경제수석 당시 ‘4대 개혁’이란 말을 처음 썼다. “어느 날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기자간담회를 할 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의 큰 방향이 네 가지다”라고 정리해서 설명했는데, 그러면서 ‘4대 개혁’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 용어는 사실 대통령께 상의드린 것도 아니었어요. 언론 기사를 보고 나서야 대통령도 아셨을 겁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서슬퍼런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를 거절하고, 기업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개입하지 못하게 한 일화는 '최순실 게이트'에 멍든 한국의 기업문화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고인은 1980년 초 전두환 계엄사령관이 권력을 장악한 뒤 설치한 국보위에 참여 요청을 받았다.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실의 예산정책과장이었던 고인은 “저는 승진을 빨리 할 생각이 없습니다. 국보위에서 일할 마음이 없습니다. 정히 그쪽으로 발령을 내면 공무원을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이 참 시원하다.
고인은 또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구조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 주변의 청탁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김대중)대통령께서 불러서 집무실로 들어갔더니 ‘내가 야당시절에 아주 가깝게 지낸 사람과 아침식사를 했다. 중견 섬유업체를 하는 사람인데 굉장히 어렵다고 하소연하더라. 그런데도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이 차마 안 나와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잘하셨습니다. 지금 그런 것이 소문이 나면 기업 구조조정을 하는 데 큰 파장이 일게 됩니다. 안 그래도 옛날 야당이던 사람들 중에는 정권 잡았다고 청탁이나 압력 넣고 싶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도와주겠다는 말을 안 한 것은 참 잘하신 겁니다’했더니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하시더라구요. 내가 나중에서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어떤 중소기업인지 한번 물어라도 볼 걸 그랬나?’ 싶었습니다”라는 그의 말이 이 시대에 주는 울림은 크다.
그는 마지막으로 후배 공무원들에게 “소신과 배짱을 가지고, 깨끗하고 정직하게 일하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고 조언했다.
정치인이기 이전에 ‘영원한 경제인’이었던 고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의 명복을 빈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