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거국내각을 許하라! 대통령은 '총통'이 아니다
2016-11-04 07:51
대한민국 헌법은 엄격한 3권분립을 바탕으로 한 미국식 대통령중심제의 전형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각제에 가까운 프랑스식 분권형 대통령제도 아니다. 내각제적인 요소가 상당히 가미된, 연합정치(연정)이 가능한 권력구조이다.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과 국회가 각각 국무총리를 고리로 권력을 분점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 한민당을 이끌던 김성수의 고육지책으로 창안됐다.
8·15 광복 후 발 빠르게 움직인 건 토착지주 중심의 보수세력이다. 그들은 한민당을 창당하고 이승만에게 영수직을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했다. 독립운동가로서 인기가 대단했던 이승만은 국내 기반 미비에도 불구하고 독자세력화에 나섰지만 5·10 총선거에서 55석(독립촉성국민회) 확보에 그쳤다. 무소속이 85석으로 가장 많았고, 한민당은 29석에 머물렀으나 친일파 출신들이 무소속으로 다수 출마해 실제로는 80석을 상회했다. 결국 지독한 여소야대는 연정이 필수 불가결했다.
30명 의원들로 선출된 헌법제정기초위원회는 권력구조를 내각책임제,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사실상 내정돼 있던 이승만이 “명목상의 대통령뿐이라면 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가겠다.”며 노골적으로 ‘총통’ 대접을 받는 대통령중심제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래서 유야무야 내각제와 대통령중심제가 혼합된,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으로 선출하고 별도의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국회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는 기형적인 제도로 출발하게 된다.
2대 국회도 여소야대였다. 204석 중 124석을 무소속이 차지하면서 역대 국회 중 최대로 기록된다. 기성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가운데 한민당 후신인 민국당이 27석, 여당 격인 대한국민당이 겨우 17석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또 다시 야당과 상의 없이 백낙준을 총리 밀어붙이려다 제지를 당했다. 이승만은 1~2대 국회 기간 동안 총 5번의 총리 인준부결을 당했다. 그의 하야라는 비운을 맞은 것도 결국 의회경시와 헌법 무시의 후과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도 현직 대통령으로서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 역시 습관적으로 헌법을 파괴하고 무시했다. 5·16군사정변으로 헌정을 중단시켰고 소속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3선 개헌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끝내는 영구집권을 위한 총통제라는 유신헌법을 통과시켰다.
거국내각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건 제2공화국 당시인 1960년 9월 30일 장면 국무총리의 국회 시정연설에서이다. 당시 국회 회의록을 보면 장 총리는 “불철주야 성심성의를 다하여 왔으며 비록 만족하다고는 못할망정 본래의 소망이던 ‘거국내각’의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발언한다. 이미 50여 년 전 실시한 거국내각을 지금에 와서 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은 결코 총통이 아니다.
최 광 웅(데이터정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