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덕혜옹주' 박해일의 파편들
2016-08-09 17:25
그의 여러 파편, 어느 것 하나도 중첩되지 않는 얼굴 사이에 8월 3일 개봉한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감독·제작 호필름·제공 디씨지플러스·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있다.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번 작품에서 박해일은 일생을 다해 덕혜옹주(손예진 분)을 지킨 독립운동가 김장한 역을 맡았다. 김장한은 영화의 오리지널리티 캐릭터로 고종의 주선으로 덕혜옹주와 약혼을 했던 김장한과 그의 형 김을한을 합친 가상의 인물이다. 소년 같은 말간 얼굴에 강직하고 충성스러운 면면들이 더해졌다. 그래서 더 묵직한, 그래서 더 로맨틱한 인물이기도 하다.
좀체 짐작할 수 없는 작품 선정 방식을 가진 것 같다. 이번 작품은 어떤 면을 보고 선택하게 된 건가?
- 덕혜옹주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다. 비운의 인물 정도로만 생각됐었지. 그러다 보니, 그 인물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문장의 힘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 김장한이라는 캐릭터가 점차 호기심이 커지더라. 그런 것들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 안에서 과거에 했던 경험들을 잘 활용하고 녹여내면 재밌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드라마로 다가갈 수 있겠다 하는.
김장한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갈 때 톤앤매너 역시 중요했을 텐데
- 덕혜옹주는 명확한 이미지, 어떤 선이 서 있을 수 있지만, 배우가 연기할 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김장한은 반대로 자료가 없지만, 살을 붙여나가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김장한 캐릭터로 이야기하자면 준비 기간이 꽤 길어서 그 기간 덕혜옹주와 시대에 대해 (허진호 감독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캐릭터의 방향성에 대해 구체적인 흐름도 짜두었다.
구체적인 흐름이란 건?
- 나름 서사가 있는 캐릭터다 보니 그런 세세한 이야기들을 재밌게 나눴던 것 같다. 김장한이 되어 합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가장 김장한스러운 건 뭘까? 왜 덕혜옹주에게 인생을 바쳤을까? 그런 부분들. 그런 걸 다져나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촬영할 때도 좋았지만 그런 준비 기간들도 즐거웠던 것 같다.
- 그 부분에서는 오히려 상의를 덜 했다. 감독님 전작을 보면 알 수 있듯, 남녀를 다루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았다. 허진호 감독만의 인물, 관계를 풀어나가는 지점들이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으니까. 시나리오도 그랬지만 찍을 때도 감정을 주고받는 상황들이 특이했다. 초반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옹주님이라는 신분도 있으니. 하하하. 시대라는 캐릭터가 하나 더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섣불리 아쉽다고 할 수 없지 않나 싶다.
덕혜옹주를 지키려는 김장한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 저도 처음부터 물음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기초, 뿌리가 딱 서야 식물이 자라듯 인물도 자라날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읽어봤는데 김장한의 이야기가 많지 않더라. 소설에서는 소 다케유키와 결혼한 부분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김장한과의 이야기는 고종황제가 딸 덕혜와 약혼을 시켜주려는 짧은 상황 정도가 묘사되어있다. 저는 그것이 이 영화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좌초되었을 때 드는 안타까움, 덕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등이. 또 역사를 떠나 비극적인 한 여자를 지키려는 마음도 깃들어 있을 수 있겠고…. 독립운동가의 아들이다 보니 나라, 즉 덕혜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등 여러 마음들이 작동되는 것 같다.
제작보고회에서 ‘본격적인 총질을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액션신에 대해서도 속 시원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부상도 입었다고
- 또 그런 얘기를…. 하하하. 다들 현장에서 다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화약총을 쏴야 하니까 연습도 많이 했다. 세팅하는 게 오래 걸리니까 한 번에 잘 찍어야 했다. 신기하게 총을 잡으면 그 감정이 잘 나온다. 그 긴장감이나 비장함 같은 것들. 그때 그 시대의 총을 쏜 경험은 배우로서 큰 희열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아! 부상은 총 때문에 당한 게 아니다. 하하하. 비밀 초가에서 장롱을 들다가 담이 들었던 거다.
‘은교’ 이후 또 한 번 노인 분장을 해냈다
-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 나잇대를 소화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거부감이나 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다면 책을 덮었겠지만, 이야기에 훅 빠져들어서 결국 끝까지 읽게 되었다. 또 제대로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보다 나아지면 더 나아졌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잘해낼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는 나잇대의 확장이었던 것 같다. 배우로서의 무기랄까. 잘 활용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확실히 두 번째라서 그런가 보는 이들도 더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더라
- 기술이 좋아졌다. 하하하. 받는 저도, 하는 이들도 더 수월했던 것 같다.
박해일만의 노인 분장 노하우가 있다면?
- 마인드컨트롤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처음에는 노인 분장이 너무 낯설 수 있는데 그 마음의 불편을 지워낼 수가 있었다.
손예진도 노인 분장을 감행했다
- 여배우가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처음 접할 때 의지대로 연기가 안 나올 수 있으니까. 표정이나 그런 부분에서 걱정이 많았을 텐데, 연기로 다 보완하더라. 처음인데도 이미 예상한 듯 다 짜온 것 같다. 동작, 자세, 표정 등에서 그 느낌을 다 살려낸 것 같다.
오랜만에 멜로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을 맡았다. 그동안 일부러 이런 작품들은 피했던 건가?
- 일부러 피한 건 아니다. 배우가 영화의 시작부터 홍보 일정 등, 마지막까지 그 긴 호흡을 버텨내야 하는데 그만큼의 호기심이나 힘이 강한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엔 그 호기심, 만족스러움을 충족시켜줄 만한 작품이라서 선택했던 것 같고.
‘짐승의 끝’과 ‘국화꽃 향기’로 일컬어지는 숱한 이미지들에서 박해일에 가장 잘 맞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 어느 것도, 자신 있는 건 없다. 강력한 호기심이 생겨 도전하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결코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