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가씨' 김민희 "여자 간의 성애신? 거부감 없었어요"

2016-06-02 00:01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히데코 역을 열연한 배우 김민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를테면 강물 같은 인상. 큰 파도 없이 잔잔하게 흐르면서,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가졌다. 하지만 물결이 일지 않는다 하여 그 속내 또한 얕은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성큼, 여배우로서 제 영역을 확보한 그는 깊어진 속내만큼이나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더 깊게, 더 멀리 나아가는 배우 김민희(34)의 이야기다.

6월 1일 개봉한 영화 ‘아가씨’(감독 박찬욱·제작 모호필름 용필름·제공 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시나리오만큼 영상도 아름답게 잘 나온 것 같아요. 그간 박찬욱 감독님의 작품들보다 더 짙고 고운 색깔이 보이더라고요. 예매율도 좋고 평도 좋아서 기분이 좋아요. 그만큼 기대도 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히데코 역을 열연한 배우 김민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번 작품에서 김민희는 사연을 감춘 아가씨 히데코 역을 맡았다. 히데코는 천진한 어린아이 같다가도 어느 순간 잔혹함을 드러내는 등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진 인물. 외면과는 다른 깊은 사연으로 시종 관객들의 흥미를 끄는 인물이다.

“히데코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그 변화하는 모습은 인물의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떻게 표출하느냐에 따라 접근을 했거든요. 인물에게 어떤 감정을 전달할 때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편안하게 여러 가지 감정을 입혀보기도 했어요. 확실하게 변화가 느껴지니까 재미있었고 완전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죠.”

‘아가씨’는 크게 숙희(김태리 분)의 시점으로 서술되는 1부와 히데코의 시점인 2부, 그리고 모든 사연을 아우르는 전지적 시점의 3부로 구성돼 있다. 각각 다른 인물들이 바라본 하나의 사건과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은 하나씩 아귀를 맞출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부에서는 순수하고 순진한 히데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고운 느낌이요. 그리고 2부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습을 드러내야 했죠. 다 해볼 수 있었던 건 2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각각 다른 모습만을 보여주려던 건 아니에요. 같은 감정이 더욱 심화하거나 섞이거나 다른 질감을 내기도 했었죠.”

영화 '아가씨' 김민희(왼쪽), 김태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려운 작업이었다. “섞고 쌓아나가는 과정” 속에서도 히데코라는 인물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가 없었다.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데 혼란스럽지는 않았냐”고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천천히 시선을 돌리곤 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이 마음을 지배한다고 해도 그 중간에 다른 감정이 끼어들 수도 있다고요. 어떤 식으로든 튀어나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혼란스러울 게 없었어요. 시나리오 안에서 확실하게 시각으로 구분이 되는 부분이 있기도 했고요.”

일본의 귀족 아가씨 히데코는 타의적으로 낭독회에 참가하고 또 다른 귀족들을 위해 망설임 없이 책의 내용을 구술한다. 히데코의 낭독 장면은 영화의 백미기도 한데 그의 능수능란한 일본어 실력에 항간에는 “일본어 더빙을 했다”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다.

“아, 정말요? 하하하.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일본어 선생님(타카기 리나)도 배우시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발음뿐만 아니라 감정이나 톤에 대해서도 잡아주시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죠. 아무래도 배우라서 그런 이해가 달랐던 것 같아요.”

‘대롱대롱’, ‘꽃이 피다’ 같은 일본어 대사들은 “예쁘고 귀엽게 느껴지기도 해서” 어느 순간부터는 “노래하듯 중얼거리는 수준”에 다다르기도 했다. “둥그런 표현들에 감정을 넣어서 부르다 보니”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리듬과는 다른 색깔의 언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히데코 역을 열연한 배우 김민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여러 요소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아가씨’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건 역시 여성 간의 사랑이다. “거부감이 있었으면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여성 간의 사랑이라고 해서 다른 사랑이라고 구분 짓지 않으려” 했다. 사랑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는 것에 전혀 걸리는 것이 없었다고.

“히데코와 숙희가 서로에게 빠져드는 과정이나 모습이 섬세하고 쉽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이 갈아주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장면이기도 해요. 그 장면에서 주고받는 눈빛이나 섬세한 결들을 관객분들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아주 미묘하고 세밀한 감각들. 여성 간의 사랑을 두고 박찬욱 감독은 온몸의 촉을 세워 그 감각적인 감정들을 나열하고 배치했다. 숙희와 히데코의 성애신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우면서도 예민한 감각들은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농밀했고 어쩌면 오래도록 회자할 만한 성애신으로 완성됐다.

“베드신 같은 경우에는 정확한 콘티가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물론 힘들었지만 제가 선택한 작품이고 영화에 필요한 요소라서 그저 잘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게다가 배려를 많이 받기도 해서 잘 이겨냈던 것 같아요. 사실 제 베드신을 처음 봤을 때는 어, 조금…이상하더라고요. 하하하. 그냥 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영화 '아가씨'에서 아가씨 히데코 역을 열연한 배우 김민희가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계열에 오른 그. 여러 작품을 지나 견고히 자신만의 성을 쌓아온 그에게 “대중들의 관심과 칭찬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는 없는지” 물었다.

“그런 것에 부담은 느끼지 않아요. 저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고 만족하면 되는 것 같아요. (대중들의 기대가) 어떤 작품을 통해서 충족되면 너무 좋겠지만, 굳이 그것에 얽매여 있지는 않아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