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외교부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히로시마(廣島) 방문과 관련해 한미간에 사전 협의를 했다고 뒤늦게 밝혔지만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일본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우리 외교의 냉엄한 현실'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27일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미국 정상으로서 원자폭탄 피폭의 역사를 간직한 이 도시를 찾는 건 2차 대전 종전 후 71년 만에 처음으로 백악관은 '핵무기 없는 세계'를 추구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히로시마 행(行)이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면죄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대해 우리 정부는 동의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12일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에 대해 "'핵무기 없는 세계'를 통한 평화와 안전을 추구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신념에 입각해 이뤄진 것으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과 관련해서 한미 양국은 그동안 긴밀한 소통을 유지해왔다"며 애써 미국 측의 행보에 대해 일각의 부정적 해석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미국 측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이 '대일(對日) 사죄'나 '면죄부'로 비칠 여지는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 측의 이번 행보에 대해 껄끄럽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란 점에 방점을 찍고 '이해한다'면서도 (오바마 행보에) 지지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지속적으로 이 같은 우려를 미국 측에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사수정주의로 치닫고 있는 아베 정부는 이번 이벤트를 전범국 이미지를 씻어낼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때문에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성사시킨 아베 정부의 외교적 승리에 비해 우리정부의 외교적 한계를 재확인 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이 소식통은 "한반도에 드리워진 긴장의 그림자가 우리로 하여금 미·중, 미·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게 한다"며 "미국과 일본이 밀착할수록 우리의 딜레마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하면서도 정작 한반도의 가장 큰 위협인 북한 핵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고 있고, 중국은 북한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한·미동맹을 견제하는 데에만 힘을 쏟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외교가 이번 오바마의 히로시마 행에서 보듯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인 셈이다.

그 사이 일본은 과거사 반성은 커녕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교도통신은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과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면서 몇 분 정도의 짧은 성명을 발표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성명에는 핵 폐기에 대한 신념과 2차 대전 미일 관계를 돌아보는 내용이 담길 것이라고 교도통신은 덧붙였다.

앞서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기고문을 통해 "(이번 방문은) 전쟁 당시 희생된 모든 무고한 피해자들(all innocents)을 추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공원 방문 시 '원폭 사망자 위령비'에서 약 200m 떨어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까지 찾을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