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르포] 사자 없는 노원병, 이준석 활개…'민심 박빙'
2016-04-03 14:13
아주경제 윤정훈·이정주 기자 = 개나리와 벚꽃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한 4월의 첫날, 서울 동북의 끝에 있는 노원구를 찾았다.
전통적인 야당 텃밭인 노원은 지난 2013년 노회찬 의원이 실형을 받아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입성한 곳이다.
노원구 선거구는 월계동과 공릉동이 속한 갑, 하계동과 중계동이 속한 을(상계 6·7동 포함), 상계동이 있는 병으로 나뉜다.
◆ 돌풍은 시작됐다. '들토끼(부동층)'를 잡아라
"자기 집 못 지키고 남의 집 가서 총선 도와주다가 망한 사람 여럿 봤어"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이 지역은 안철수 대표가 이준석 새누리당 후보를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 후보는 높은 인지도와 젊은 정치를 내세워 안 대표를 추격 중이다. 안 대표가 당의 전국 유세를 위해 비운 사이 이 후보는 지역 구석구석을 도며 '들토끼'의 마음을 돌리는 중이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상계역과 노원역에서 출근인사를 시작으로, 지역구 인사와 지역 노인정 방문 등을 하며 표심 공략에 나섰다.
상계5동에서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는 이 후보는 지역구에서 나고 자랐다는 점이 큰 장점이며, 무엇보다 남은 선거 기간 지역구 유세에 오롯이 다 투자해 승부를 뒤집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오후 상계1동 노인정에서 만난 이 후보는 "볼 수 있는 판도는 저희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한다"며 "접근하기 힘든 젊은 층과 부동층 표를 끌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안 대표도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지만, 노원에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6시30분부터 약 2시간여 출근길 인사를 한 안 대표는 곧장 수도권 지역의 국민의당 후보 지지를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 대표는 지역구 선거 전략에 대해 "저녁 늦게라도 다시 노원으로 넘어와서 퇴근길 인사와 상가를 열심히 방문하며 다니겠다"라고 말했다.
◆ '미워도 다시 한 번' 안철수 vs '젊은 정치' 이준석
이날 오후 4시경 노원역에서 만난 20~30대 중 절반 이상이 안 대표를 지지했다. "안철수 대표밖에 모른다", "제3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새누리당이 싫어서" 등이 지지하는 이유다.
하지만 주거지역인 마들역 인근의 민심은 또 달랐다. 30대 주부는 "안철수가 와서 바뀐 게 없다. 젊은 사람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70대 여성은 "하버드 대학 출신 아니냐"며 "자주 봐서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50대 남성은 "지하철 급행 공약을 했다"며 "이젠 젊은 사람이 해야지"라고 말했다.
상계 중앙시장에서는 안 대표와 이 후보의 지지하는 사람이 박빙이었다. 안 대표의 지지층은 그래도 거물이고, 새로운 정치인이라는 이유를 꼽았다. 반면 이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은 여당의 젊은 이 후보를 한 번 믿어보자는 마음이 강했다.
황창화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한 30대 초반의 여성은 "차선책"이라며 "야권이 분열돼 있는데, 거대 여당에 맞설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지지한다"고 말했다.
주희준 정의당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은 "주 후보가 시장을 위해 일을 많이 했고,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 李후보 “4·7호선 급행열차”…경쟁 후보 “실현 가능성 작다” 한목소리
노원 지역의 현안은 △일자리 △교통 △도봉면허시험장 이전 부지 활용 △창동 차량기지 이전 등이다.
이 후보는 '급행 지하철로 매일 20분을 돌려드립니다'라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하철 4·7호선 급행 구간 신설을 통해 출퇴근 시간을 단축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그러나 야당 후보들은 이에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임기 내 달성하기에는 비현실적인 공약이라는 이유다.
안 대표는 이 후보의 공약에 대해 "그게 단기간에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장기적으로는 하겠다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추진)하려고 해도 굉장히 많은 정치력과 영향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황 후보도 "9호선처럼 (4·7호선이)복선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기본적으로 급행이 되려면 복선화와 동시에 환승할 때 교차하는 게 필요하다"며 "4·7호선은 현재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주 정의당 후보도 비판에 가세했다. 주 후보는 "노원의 교통문제 개선을 위해 터널을 뚫는다는 등의 공약은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라며 "창동으로 이어지는 지상 지하철의 지하화도 그중 하나지만 이행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적인 예산이 소요돼 지역구 의원이 지킬 수 없는 공약보다 오히려 실질적으로 서민이 고통받는 부분에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달리는 기차는 멈출 수 없다'…야권 연대 없이 완주
이번 총선에서 노원병은 야권연대 논란의 시발점이자 무풍지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 대표는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기존 야권과의 연대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안 대표가 '당대 당' 연합은 없다며 선을 그으면서 야권후보들 사이 후보 단일화를 놓고 혼전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당은 후보자 간 연대는 당과 협의만 한다면 굳이 막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각 후보들은 중앙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원병 지역구에서는 처음부터 안 대표가 야권연대 거절 의사를 강력히 표명하면서 다른 야당들도 완주 의지를 밝히고 있다.
황 후보는 "(안 후보가)당을 깨고 나와서 이런 상황을 조성한 것 자체가 기가 막힌다"며 "안 후보가 말하는 기득권 양당 체제는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지적했다. 또 "우리나라 처럼 소선거구제도 하에서는 양당 구도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며 "선거구제가 원인으로 작용한 결과가 바로 양당 체제"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선거제도를 바꾸자고 주장해야 한다"라며 "선거제도를 그대로 두고 양당을 기득권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후보도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해 말 야권연대에 대해 먼저 제안했지만 양당이 모두 거부했다"며 "'당대 당' 연합이라면 충분히 논의할 생각이 있었고 그 결과에 따라 우리의 거취를 구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끝까지 완주할 생각"이라며 "이곳의 많은 30~40대 남성들이 후보는 고민 중이지만 정당투표는 정의당을 찍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