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포스트] 'CJ헬로비전 인수' SKT·KT·LG유플의 자가당착과 아전인수

2015-12-31 15:11

(위사진)29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2016년 방송통신산업 현압과 해결 방향 모색' 심포지엄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의 모습. 왼쪽부터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 이상헌 SKT, 김성철 고려대 교수, 김도연 국민대 교수, 김용규 한양대 교수, 곽규태 호남대 교수, 조성동 한국방송협회 연구위원. (아래사진)심포지엄 현장 모습. [사진=최서윤 기자]


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SK텔레콤 vs. KT·LG유플러스. 이른바 ‘통신 삼국지’라 불리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3사의 형세입니다. 발단은 SK텔레콤이 지난달 2일 발표한 ‘CJ헬로비전 인수 계획’이었습니다. 방송·통신계는 물론 학계까지 가시 돋친 난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우리나라 방송시장에는 지상파, 케이블TV, 위성방송, 인터넷TV(IPTV), 종합편성채널 등의 서비스 형태가 존재합니다. 케이블TV는 전국을 77개 권역으로 나눠 각 사업자들이 서비스하고 있는데요, 정부는 사실상 특정 지역을 독점하고 있는 사업자가 지역채널을 의무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정해놨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주민은 총선 등 선거방송이나 지역뉴스를 제공받습니다. 보도기능이 있는 것이죠.

전국 점유율 1위 케이블TV 업체는 23개 권역을 가진 CJ헬로비전입니다. 이 업체를 이동통신시장에서 점유율 1위인 SK텔레콤이 인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가 인수·합병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통시장 지배력이 방송시장에 전이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동통신을 포함한 결합상품의 이통 3사 점유율이 이통시장과 비슷하게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28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방송·통신 결합상품 가입자의 이통사 점유율은 SK군 44.8%, KT군 33.0%, LG유플러스 21.9%로 집계됐는데요, 이는 이통시장 점유율과 비슷한 ‘5 : 3 : 2’ 구도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해 QPS 전략을 펼치면 이통시장에서 KT와 LG유플러스의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은 IPTV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를 올해 상반기에 완전자회사로 편입했습니다. IPTV 서비스를 소유한 대기업이 케이블TV 업체를 사들이는 것입니다. 한 시장 내에서 형태만 다른 사업자(방송서비스)들이 합쳐지면 경쟁자는 줄어듭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월 사설에서 기업 간 합병에 대해 “경쟁사가 줄어들면서 통합된 기업은 고객을 잃지 않고 쉽게 가격을 올릴 수 있다”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업계와 학계에서도 ‘가격이 오를 것이다’, ‘디지털방송인 IPTV사업자가 케이블TV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SK텔레콤의 보도방송 운영 자격을 심사해야 한다’, ‘소비자 후생이 악화할 것이다’ 등의 지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이런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각종 토론회에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SK텔레콤은 지난 29일에도 한국미디어경영학회가 주최한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에 관한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왔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도 토론자로 참석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양사는 행사 시작 10분 전 “특정사업자를 대변하는 왜곡된 심포지엄”이라며 불참을 통보했습니다.

"합병을 승인하되 예상 문제는 조건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는 이날 김성철 고려대 교수의 발제가 SK텔레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한 것이라는 겁니다. 편파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의 갑작스러운 보이콧에 이날 심포지엄은 결국 반쪽짜리가 돼 버렸습니다.

이날 김성철 교수는 “투자할 의지와 능력이 없는 케이블TV방송 업계는 현실적으로 대기업이 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SK그룹 계열사인 SK C&C에서 팀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습니다.

김용규 한양대 교수도 “유료방송 시장구조 측면에서 우려되는 면이 있다”면서도 “인수기업의 투자로 품질이 향상되고 결합상품으로 서비스 요금이 낮아져 이에 따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도 합병에 반대하는 의견은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뿐이었습니다. 현장에서 본 최 교수는 혼자 지지자들의 논리에 반박하기 바빴습니다. 최 교수는 “글로벌 미디어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규모만 커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기업이 유선방송시장에서 ‘큰손’으로 자리 잡으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고용 문제도 되짚었습니다. 그는 “CJ헬로비전에서 일하는 분들의 업무 환경은 열악하다. SK텔레콤이 그들을 과연 정규직으로 만들지 의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단순히 케이블 업계가 어려우니까 대기업이 인수해서 투자해야 한다는 건 비약이다”고 지적했습니다.

KT와 LG유플러스가 자리에 있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까요? 보도자료를 통해 행사의 편향성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토론장에 나와서 조목조목 반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이전 토론회에서 편향성 논란이 없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달 17일 양사 합병에 비판적인 발제가 진행된 서강대 법과시장경제센터 토론회는 KT와 LG유플러스가 후원한 것으로 밝혀졌고, 지난 4일 한국언론학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는 발제문과 달리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의 부정적인 효과만 부각한 보도자료가 배포돼 발제자와 SK텔레콤이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통3사의 물고 뜯는 '밥그릇 싸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겁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사리(事理)에 맞지도 않는 명분을 찾아 헤매는 그들의 논쟁은 소모적인 자가당착이라는 지적입니다.

토론장에 나와 민감한 주제라며 입을 닫아 버리고, 이윤추구가 목적인 기업이 대뜸 나서 ‘방송의 공공성’을 운운한다면 어느 누구도 쉽게 수긍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