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협상 타결] 전쟁위기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남북관계 새출발

2015-08-25 03:27
北 지뢰도발 유감-南 확성기 방송 중단 극적 합의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탄력 전망
전문가들, 남북고위급접촉 성과가 향후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사진=신화사]



아주경제 주진 기자 =일촉즉발 벼랑 끝으로 치닫던 남북이 ‘무박4일’ 장장 43시간의 마라톤 협상을 벌여 25일 남북이 당장의 군사적 충돌을 해소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과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6개항에 합의함에 따라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013년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좀처럼 풀리지 않던 경색된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고, 연내 이산가족 상봉 행사 개최와 금강산 관광 재개, 경원선 착공식, DMZ 평화공원 추진, 5·24 대북제재 조치 해제 등 남북 간 통큰 경제 협력과 인적 교류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을 맞는 올해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남북이 이번 고위급 접촉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나아가기로 큰 틀에서 합의한 것은 향후 동북아 외교전에서 남북이 주도권을 확보하고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북한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 측 입장과 대북심리전 방송 중단을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면서도 전례없는 24시간 밤샘 마라톤 협상과 정회 후 추가 협상을 재개한 것은 양측의 강한 대화 의지가 표출된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측의 제안으로 전격적으로 성사된 남북 고위급 접촉으로 일촉즉발 군사적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을 번 것도 주효했다.

특히 북한은 지난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이후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남측의 조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연평도 포격에 대해서도 남측에 책임을 돌리는 등 그동안 발뺌과 책임 떠 넘기를 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지뢰·포격도발에 대한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 약속은 이례적이고, 의미 있는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난제로 여겨졌던 도발에 대한 유감을 표시하고, 우리 정부도 대북 심리전 방송의 중단을 약속하는 상생의 모습을 남북이 모처럼 연출한 것이다.

당장 이번 협상 타결로 북측의 지뢰도발→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북측의 포격도발→우리 군의 대응포격→북측의 전방지역 준전시상태 선포 등으로 급격히 고조됐던 남북 간 일촉즉발의 긴장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은 가장 큰 이유는 남북간 군사 대결을 원치 않으며 관계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은 초점은 달랐지만 남북간 명확한 지향점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타결로 이르렀다.

북측은 체제에 심각한 위협, 이른바 '최고존엄'(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에 대한 모독으로 인식하는 대북 심리전 방송의 중단이 절실했다.

이 때문에 군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까지 나서 장장 나흘에 걸친 지루한 줄다리기에도 자리를 박차지 않고 끝까지 협상에 임했던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도발-대화-보상'으로 이르는 그동안의 북한의 도발 악순환을 이번 기회에 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주효했다.

배수의 진을 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원칙이 북한의 태도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동북아 외교적 지형도 남북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고, 극적타결을 이루는 데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미국과 일본,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 당하고 있는데다 자신의 동맹국인 중국과도 갈등을 겪고 있고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에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해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태다.

우리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미중일 동북아 외교전쟁 속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또 한반도 긴장 고조는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가뜩이나 불안한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의 성과가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북한에 제안해온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구상’, ‘통일대박론’ 등 대북정책들에도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추진되면서 힘이 실릴지 주목된다.

우선 남북은 추석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해 9월 초 적십자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이른 시일 내에 개최하기로 하고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남북 접촉이 양측 정상의 뜻과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인사인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한 내 서열 2위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수석대표로 나선 가운데 이뤄졌다는 점도 남북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북측은 회담 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정회를 요청하고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훈령을 받았고, 우리도 박근혜 대통령이 거의 실시간으로 회담 진행 상황을 보고받으면서 필요할 때마다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 점이 주목된다.

사실상 이번 접촉이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 사이에 '간접 회담'이 이뤄진 셈이다. 결국 이번 접촉이 남북정상회담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이다. 언제라도 북한이 대화에 응해온다면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묻자 "분단 고통 해소와 평화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며 "남북정상회담도 그런데 도움이 되면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하는데 전제조건은 없다"고 밝혔다.

이번 남북 접촉에 참여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도 광복절 다음날인 지난 16일 한 방송에 출연, "남북간 정상회담도 그것이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남북 관계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이번 접촉의 성과가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