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접촉] 릴레이‘밀당’ 회담 왜 늦어지나...의제 자체가 양보 힘들어

2015-08-24 17:51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지난 22일 1차 밤샘 협상에 이어 2차 협상까지 이틀 연속 밤을 새우며 '마라톤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 회담이 이처럼 연속적으로 '밤샘협상'을 한 경우는 없어 이례적이란 평가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양측 수석대표로 하는 남북 대표단은 지난 22일 오후 6시 30분께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에 들어갔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지난 22일 1차 밤샘 협상에 이어 2차 협상까지 이틀 연속 밤을 새우며 '마라톤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남북 회담이 이처럼 연속적으로 '밤샘협상'을 한 경우는 없어 이례적이란 평가다. 사진은 (왼쪽 위 시계반대방향) 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사진= 통일부 제공]
 

이튿날인 23일 오전 4시 15분까지 밤을 새워 협상을 벌인 양측은 약 11시간 동안 정회한 뒤 같은날 오후 3시 30분 접촉을 재개했다. 하지만 남북 대표단은 24시간을 넘긴 이날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남북이 길고 긴 마라톤 협상을 이어가는 것은 이번 의제 자체가 양측으로서는 쉽게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DMZ 지뢰도발에 대한 사과 필수요건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은 북한의 DMZ 지뢰도발에 대한 사과 문제이다. 

북측은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북한의 지난 4일 DMZ 내 지뢰도발과 20일 서부전선 포격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측은 이미 고위급 접촉 전부터 지뢰도발과 포격도발에 대해 "남측이 조작한 것"이라며 발뺌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위기해소의 출발은 북측이 우리측 부사관 2명에게 큰 부상을 입힌 지뢰도발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우리 정부의 단호한 입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남북이 협상중임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이례적으로 밝힌 데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측은 또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해서도 '주체가 분명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은 북한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책임의 주체가 분명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도 북측의 사과가 우선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이 가장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대북 확성기 방송 문제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대북 확성기 방송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이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도 단호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북측이 요구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문제의 경우 북측의 지뢰도발로 방송을 재개한 만큼 지뢰도발에 대한 북측의 성의있는 태도 이전에는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남북한 양측이 합의에 이르기 힘든 의제를 갖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고위급 접촉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밤샘협상은 남북 대화의 '감초'

남북 대화에 있어 밤샘협상은 자주 있어왔다. 다만 이번처럼 연속적인 밤샘협상의 경우 사례를 찾기 힘들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회담에서 밤샘협상은 늘 있어왔던 것이지만, 이번처럼 이틀 연속 밤을 새워가며 논의에 임한 사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상 2박 3일에서 5박 6일 일정으로 진행된 남북 장관급 회담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막판 기싸움이 벌어졌고, '남북회담 마지막 날은 합의문 도출을 위한 밤샘작업이 있다'는 것이 관행화됐다.

실제 2013년 개성공단 가동중단 사태와 관련해 같은해 7월 열린 개성공단 1차 실무회담과, 9월 열린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2차 회의가 각각 16시간, 20시간이 소요된 밤샘협상으로 진행됐다.

회담 일정이 하루 이틀 연장되는 사례도 드물지 않았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2차, 4차 장관급회담 당시 남북 대표단은 밤샘 논의를 하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일정을 연장했고, 같은해 금강산에서 열린 2차 적십자 회담도 남측의 결렬선언 후에야 합의서가 채택됨으로써 사실상 일정이 하루 연장됐다.

◆ 북한 협상 태도의 변화에 주목

하지만 22일부터 진행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이와는 양상이 다소 다른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의제선정부터 입씨름을 벌이다 밤샘협상으로 이어지는 외견은 비슷할지 몰라도 원인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측의 태도에도 변화가 있다는 전언이다.

협상장 안팎에서는"북한의 엉덩이가 이처럼 무거운 적이 없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이 그동안의 협상 태도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어떤 식의 결론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고위급 회담은 통상 사전 실무접촉을 거치기 마련이지만 이번 접촉은 북측의 포격도발과 경고성 포격전,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준전시상태 선포 등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극적으로 성사된 까닭에 그럴 여유가 없었다.

이로 인해 양측 수석대표이자 남북의 비공식·공식적 군서열 1위인 김 안보실장과 황 총정치국장은 남북관계 현안과 관련 실무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협의해 풀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