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째 '여성' 윤석남 "아직도 나는 수없이 많은 여성의 삶을 캐내고 싶다"

2015-04-22 15:34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윤석남 ♥심장' 전 개최

[윤석남,<종소리>, mixed media, 2002]


 

 아주경제 박현주기자=과장되게 늘어난 팔이 눈길을 끄는 작품 '종소리'는 버려진 나무로 제작됐다. 한복을 입고 쪽을 진 여인은 조선시대 시와 노래에 능했던 기생 이매창이다. 원피스에 신발을 신고 있는 여인은 21세기 여성으로 작가 자신. 나무 틀안에 갇힌채 서로를 향해 푸른 종을 흔드는 작품은 부조와 환조의 형식으로 흥미롭게 대비되고 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윤석남(76)의 신작이다. 그는 재능이나 발언을 억누른 채 살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여성들을 현재로 소환하여 재해석해낸다. 그동안 어머니의 모성과 강인함, 억눌려 지내온 모든 여성들을 작품에 대변해오며 주목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윤석남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SeMA 그린(Green): 윤석남 ♥심장' 전을 연다.  고전적인 회고전 형식을 탈피하고 어머니, 자연, 여성사, 문학 등 4개의 주제로 구성하여 50여점을 선보인다.

 또한 <허난설헌>, <이매창>,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등 역사 속의 여성을 다룬 신작과 윤석남 특유의 서사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드로잉 160여 점을 함께 소개해, 작가가 천착해 온 주제들을 다양한 형식의 작품들을 살펴볼 수있다.

 36년째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윤석남은 "내 작품은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됐다"고 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40세가 돼서야 작업실을 갖추고 미술에 입문했다. 가장 먼저 그린건 어머니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머니를 소재로 삼았던 기억이 납니다."

 39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자녀 6명을 키워낸 자신의 어머니의 형상과 실제로 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결합해 1982년 '무제'로 표현했다. 이후 어머니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모성, 여성성, 생태 등 다양한 주제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시각화했고, 그에겐 '여성주의 미술작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무제>, oil on canvas, 1982.윤석남이 40세에 미술을 시작한 뒤 가장 먼저 화폭에 담은 소재는 당신의 ‘어머니’이다. 작가의 어머니는 39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6명의 자식을 혼자 힘으로 키워냈는데, 윤석남은 이러한 어머니의 삶을 위대하다고 여기며, 깊은 존경심과 함께 그녀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을 함께 담아내고자 하였다. 실제로 시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을 관찰한 뒤 자신의 어머니의 형상과 결합하여 그려낸 윤석남의 1982년 첫 개인전 출품작이다.]
 


윤석남은 ​"1985년에야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당시에는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스트라는 말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주의 미술작가'소리를 들으면서 이후엔 "여성주의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감성만이 아니라 공부도 하고 사회 현상에 대한 분석도 하면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이번 전시에는 높이 3m, 지름 2m의 거대한 핑크빛 심장 형상이 압도한다. 신작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다. 자기 재산을 팔아 굶어 죽어가던 제주도민을 위한 구휼미를 제공했던 조선 정조시대 거상 김만덕(1739~1812)을 기리는 작품으로 윤석남 작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또 다른 신작은 조선 중기 여류시인으로 27세로 요절한 허난설헌(1563~1589)과 시와 노래에 능했던 이매창(1573~1610)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작가는 "이번에 역사 속 여성 3명의 삶을 작품으로 선보였지만 나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여성의 삶을 캐내어 표현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전시기간인 5월9일 작가와의 대화시간이 열리고, 5월 30일엔 김영옥 연세대 문화학과 강사가 윤석남작가에 대해 강연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02)2124-89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