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공정위에 국세청·지자체까지 사정의 연속···숨 넘어가는 재계
2015-03-17 16:09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검찰의 재계 주요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시작에 불과하다.
검찰이 대기업을 맡는다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6일부터 하도급 거래가 많은 업종 기업들에 대한 불공정 거래 여부에 대한 현장조사를 개시했다. 이어 국세청도 내사를 진행했던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준비중이며, 5월부터는 지방자치단체도 기업 본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사안을 두고 복수의 사정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무죄 추정의 원칙’은 소용이 없다. 사정당국들은 불법 혐의가 거론되는 기업들을 먼저 여론에 공개하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수사 과정에서 이해 관계자들의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수많은 제보가 쏟아지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돼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사실상 반론을 포기했고, 주변 기업들도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검찰의 수사 대상 기업으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아무것도 결정난 것이 없는데 소문 때문에 회사내가 굉장히 시끄럽다. 검찰측에서 일부러 소문을 흘려 첩보를 모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전했다.
대기업 홍보 관계자도 “우리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난주부터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가 자정까지 관련 뉴스를 모두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원진들도 뉴스를 거의 실시간 보고 받고 있다. 반기업 정서와 경제 민주화와는 전혀 다른, 이번에는 정말로 기업들이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로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포스코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와 전략적 제휴의 최종 계약서 서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를 맺고 추진 중인 국민차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기업 비리수사 압박이 전 방위에 걸쳐 진행되는 주된 이유를 최근 들어 정부의 정책에 반하는 분위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3주년을 맞는 올해 초까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기업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와 재계가 화해무드로 돌아서는 듯했다. 하지만 정부의 임금인상과 고용확대 주문에 기업들이 투자는 늘리되 채용은 줄일 수 밖에 없다고 맞서는 양상을 보이면서 흐름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지난 13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5단체장들을 만나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에 대해 재계는 사실상의 ‘정부의 최후통첩’으로 받아들였다. 최 부총리와의 간담회 결과에 대한 분석도 채마치기 전에 검찰은 포스코건설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이번주 들어 동부그룹과 신세계, SK건설 등으로 확대됐다. 여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기업이 수사의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도 아웃도어 업체 11곳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자동차, 기계, 선박, 건설 등 하도급 거래가 많은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대기업이 중견·중소 협력업체들에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지급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 조사의 초점인데, 조사 결과가 기업들에게 미칠 파장은 적지 않다.
아직 박 대통령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았지만 지지율 하락으로 조기 레임덕 조짐을 보이고 있는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을 희생물로 삼아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 정권의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국정조사와 방위산업 비리에 대한 합동수사단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비리 수사의 최정점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리잡고 있다. 박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부패척결의 목적은 이 전 대통령이며, 이에 전 정권과 인연을 맺어온 기업들이 사정의 맨 우선순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을 했다 하더라도 이번 사정당국의 압박은 현·전 정부간 알력다툼 과정에서 터진 것이라는 게 재계의 공통된 견해다. 이래서야 어떻게 기업이 국가경제를 위해 뛸 수 있겠느냐”며 답답함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