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 집을 짓고
2015-03-16 15:43
늦겨울 추위에 길은 얼고
너도 얼음장 속을 찾아 떠났다
혼자 사는 밤마다 내리는 폭설
눈 속에 갇혀 소리 없이 잣는 물레
찬바람 드는 낡은 창문에서는
언제 동이 틀까
심하게 도진 내 영혼의 우울증을 다독여
너를 위해 한 채의 집을 지었다
볕드는 어깨 양지바른 늑골
습진에 허물을 벗는 겨드랑이 어디쯤
겨울밤 한파 내내 물레로 발라 낸 한 땀
기둥을 세우고 벽을 치고
마지막 타래까지 풀어
남쪽으로 단 햇살 너른 창문
우리가 살아갈 집을
거친 입김으로 녹여 짓고
너른 창에서 새로 맞는 아침이면
어느새 문 앞에서 강물소리를 내는 수풀
풀잎 흔드는 소리에 대문을 열면
물 오른 버들개지를 쬐는 햇살의 노래
먹먹해지는 마음에 맺히는 현기증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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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내 집을 지었다. 시골서 어른들이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고 했다. 그래서 50살 넘으면 집을 짓지 말라 했다. 그만큼 집 짓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농촌에서는 더욱 그렇다. 옛사람들에게 집은 온전히 가족들의 주거공간이며 또한 정신을 담아놓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조상들의 정신을 모셔놓은 사당도 있었다. 그런 집에서는 단순히 건축비와 자재와 공법, 모양 등만이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정신과 마음으로 짓는가가 더 중요했다.
하지만 요즘엔 집이 가벼워지고 있다. 조상들의 얼을 담기까지는 너무 멀다 해도 가족들이 어울려 사는 집까지도 못가고 그냥 부동산적인 투자로 접근한 집짓기도 많다. 집짓기에서 경제논리가 우선됐다. 이런 집에서 조금 벗어난 생각을 하면서 찾는 것이 그나마 전원주택이다. 가족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안락하고 친환경적인 집, 마당있는 집이다. 여기에 요즘은 집이 아닌 창고 개념, 놀이공간으로 전원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집의 개념이 조상들의 얼을 담은 가족들의 주거공간에서 가족과 친구, 친지들과 어울리는 놀이공간으로 진화하는 것이 요즘시대의 전원주택이다. 가벼워지는 전원주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