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 경고 불구…꼬리에 꼬리 문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2014-12-02 10:45
아주경제 석유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의혹이 담긴 청와대 내부 문건 유출에 대해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의혹은 확대 재생산되는 모습이다.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지난 10여년간 정윤회 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정윤회 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2일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올 초까지 정윤회 씨와 연락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조 전 비서관은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을 작성·유출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박 모 경정의 직속 상관으로 지난 4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이재만 비서관 "(정윤회 씨) 전화 받으시죠" 언질…통화 안 하니 이후 사퇴 통보 받아
조응천 전 비서관은 인터뷰에서 "지난 4월 10일과 11일 청와대 공용 휴대전화로 전화가 왔는데 모르는 번호여서 받지 않았다"며 "그 직후 '정윤회입니다. 통화를 좀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고 말했다.
조 전 비서관은 이어 "지난 4월 11일 퇴근길에 이재만 비서관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정씨의) 전화를 좀 받으시죠'라고 했다"며 "이 비서관에게 '좀 생각해 보고요'라고 답변했으나 정씨와 통화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조 전 비서관의 이 같은 발언은 정윤회 씨와 이재만 비서관이 2003년 또는 2004년인가에 마지막으로 만났는지는 몰라도 이후에도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이어 4월 15일 홍경식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부터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며 사표를 제출하란 통보를 받았고, 이후 사퇴했다고 설명했다.
◆"정윤회 동향 문건 신빙성 6할 이상…가능성 6, 7할이면 조사해 보고"
특히 조 전 비서관은 유출된 '정윤회 씨 동향 문건'의 신빙성에 대해 "6할 이상이라고 본다"면서 "(첩보가 맞을 가능성이) 6~7할쯤 되면 상부 보고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밝혀, 정윤회 씨의 국정 개입 파문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문건 내용은 실제 모임에 참석해서 그 얘기를 듣지 않았으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것이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으로부터 그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모 경정이 문건을 작성한 진위 여부에 대해서도 신뢰를 보이며 "박 경정이 작문을 했다? 왜? 그가 거짓말을 해서 이득을 볼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추가 조사를 하라는 지시는 없었고 대신 얼마 뒤 박 경정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했다.
문건 작성자인 박모 경정이 경찰로 복귀한 뒤 3개월 뒤인 지난 4월 자신도 청와대를 나오게 된 배경에 정윤회 씨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 전 비서관은 또한 "박 모 경정이 문건을 유출했다면 나쁜 놈이겠지만 지난 5, 6월 올라간 문건에는 박 경정이 아닌 제3자가 범인으로 지목돼 있다"면서 문건 유출자는 박모 경정이 아님을 시사했다.
앞서 청와대 측은 정윤회 씨 동향 문건에 대해 "사실무근, 찌라시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조 전 비서관이 입을 연 이상 논란은 증폭될 조짐이다.
◆조응천보다 먼저 입 연 정윤회 "민정수석실이 조작"
조응천 전 비서관이 이처럼 해당 문건의 신빙성이 크다고 주장한 반면 정윤회 씨도 1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박지만 씨를 미행했다는 소문부터 유출된 문건까지 모두 민정수석실이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문건 내용이 사실이라면 청와대에서 확인해 일벌백계를 해야지 그냥 넘어갈 일이냐"고 밝혔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 행위”라며 “누구든지 부적절한 처신이 확인될 경우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로 조치할 것이고, 악의적인 중상이 있었다면 그 또한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 입장표명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정씨는 지난달 말 문건 작성자로 지목된 박 모 경정과 통화한 사실도 공개했다. 당시 통화에서 박 경정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타이핑한 죄밖에 없다', '그것을 밝히려면 윗선에서 밝혀야 하지 않겠냐, 그 사람들이 얘기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고 밝혔다.
한편 조응천 전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 대선 캠프 출신으로,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측근이다. 검사 출신인 조 전 비서관은 1993년 박지만 씨의 마약사건을 담당하면서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비서관은 "내가 박 회장의 천거로 청와대에 들어와 박 회장의 오더로 비선 쪽과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일패도지했다고들 얘기하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