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
2014-11-03 08:14
나이가 들어 홀로 살아가던 태식은 급하게 끌어다 쓴 사채 때문에 ‘독재자’와 같은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한다. 태식은 김일성에 빙의된 아버지 성근을 못마땅해 한다.
‘나의 독재자’의 연출자 이해준 감독을 지난달 2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는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
“화가 많으셨어요. 독재자같은 분이셨죠. 항상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뒤틀려 계실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궁금했죠. 그렇다고 진짜 독재자이신 것은 아니었어요. 영화 제목에 ‘나의’라는 말이 붙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담겼다고 볼 수 있죠.”
“아들인 태식 역시 또 다른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이해준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이해로 극복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나의 독재자’는 70년대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70년대는 성근의 이야기. 90년대는 성근과 태식의 스토리다. ‘나의 독재자’는 배경부터 소품까지 당시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박해일의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그래도 설경구의 김일성 분장은 정말 완벽했다. 설경구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설경구 선배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물리적으로 특수분장이라는 우리에 가뒀으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어요. 남들 다 자는 자정부터 밤을 세워가며 분장을 했죠. 동이 트자마자 연기를 시작하는데, 육체적인 고단함뿐만 아니라 성근에 대한 배우로서의 고민까지 있었으니까요. 굉장히 치열하게 했죠.”
박해일에 대한 극찬도 이어졌다.
“영화의 중심인 특수분장은 하고 난 뒤 3시간이 가장 컨디션이 좋아요. 그 다음에는 분장이 뜨죠. 분장이 끝나면 무조건 설경구 선배의 얼굴부터 클로즈업으로 찍었어요. 모든 촬영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를 상대해야하는 박해일로서는 자신의 연기 리듬이 깨지는 게 당연하고요. 항상 첫 번째를 상대하는 역이니까요. 그래도 ‘은교’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끝까지 설경구 선배를 배려하고 연기에 임하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지난 2002년 ‘품행 제로’의 각본을 쓰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2년 뒤 ‘안녕! 유에프오’ ‘아라한 장풍대작전’(04) ‘남극일기’(05)를 거쳐 ‘천하장사마돈나’(06)의 각본과 메가폰을 맡으며 감독 명함을 손에 쥐었다.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무인도에 갇혀버린 남자와 히키코모리 여자의 만남을 그린 ‘김씨표류기’(09) 역시 이해준 감독의 대표작. ‘끝까지 간다’의 각색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해준 감독은 영화 전공이 아닌 서울예술대학교 광고창작과 출신이다.
“광고를 배우고 났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라면 당장 고민하고 쓸 수 있으니까 시작했죠.”
메가폰을 잡았지만 작품 간에 텀이 긴 것도 사실이다.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번에는 쉬지 않고 일하리라 다짐했죠. 영화라는 게 한 편을 완성하고 고민하는 순간 몇 년이 훅 가거든요(웃음). 다음 작품으로는 장르가 먼저인 영화를 하고 싶어요. 장르에 맞춰진 영화요.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웃음).”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이해준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