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가 된다”

2014-11-03 08:14

영화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영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제작 반짝반짝영화사)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 무대에서 빛나길 꿈꾸던 아버지 김성근(설경구)이 남북정상회담에 앞서 김일성 대역을 연기하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아들 태식(박해일)과의 사이가 틀어져 버린다는 큰 줄거리를 갖고 있다.

나이가 들어 홀로 살아가던 태식은 급하게 끌어다 쓴 사채 때문에 ‘독재자’와 같은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한다. 태식은 김일성에 빙의된 아버지 성근을 못마땅해 한다.

‘나의 독재자’의 연출자 이해준 감독을 지난달 2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단도직입적으로 이해준 감독의 아버지는 어떤 인물인지 물었다.

“화가 많으셨어요. 독재자같은 분이셨죠. 항상 아버지는 무엇 때문에 뒤틀려 계실까 생각한 적이 있어요. 궁금했죠. 그렇다고 진짜 독재자이신 것은 아니었어요. 영화 제목에 ‘나의’라는 말이 붙잖아요?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담겼다고 볼 수 있죠.”
 

영화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해준 감독은 자신의 가정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해준 감독에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재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최근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생각하는 이해준 감독의 눈빛에서 그리움을 느꼈다.

“아들인 태식 역시 또 다른 아이를 낳고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이해준 감독은 “아버지에 대한 상처를 이해로 극복하면서, 스스로 또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나의 독재자’는 70년대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70년대는 성근의 이야기. 90년대는 성근과 태식의 스토리다. ‘나의 독재자’는 배경부터 소품까지 당시 시대를 구현하기 위해 애를 썼다. 박해일의 의상부터 헤어스타일까지 감독의 노력이 엿보인다.

“제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이야기라 자연스럽게 배경과 소품을 그렸던 것 같아요. 시대극이 상당히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장르죠. 그래서 70년대와 90년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선별해 표현했어요. 특히 박해일의 양복은 당시 잘 나간다는 사람들만 입는다는 ‘알마니’ 분위기를 내려고 했는데, 어땠나요?(웃음)”
 

영화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 감독에 의하면 사극의 경우 세트나 의상이 많지만 70년대는 합천 세트장 외에는 전혀 없다.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다고. 90년대는 부동산 열풍이 불었던 시기라 대규모 공사장을 섭외하려고 했으나 안전상의 문제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해준 감독은 “시간에 쫓기다보니 완벽하게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장소를 섭외하지 못한 부분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설경구의 김일성 분장은 정말 완벽했다. 설경구의 모습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설경구 선배는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물리적으로 특수분장이라는 우리에 가뒀으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어요. 남들 다 자는 자정부터 밤을 세워가며 분장을 했죠. 동이 트자마자 연기를 시작하는데, 육체적인 고단함뿐만 아니라 성근에 대한 배우로서의 고민까지 있었으니까요. 굉장히 치열하게 했죠.”

박해일에 대한 극찬도 이어졌다.

“영화의 중심인 특수분장은 하고 난 뒤 3시간이 가장 컨디션이 좋아요. 그 다음에는 분장이 뜨죠. 분장이 끝나면 무조건 설경구 선배의 얼굴부터 클로즈업으로 찍었어요. 모든 촬영 순서가 뒤죽박죽이 된다고 보면 됩니다. 이를 상대해야하는 박해일로서는 자신의 연기 리듬이 깨지는 게 당연하고요. 항상 첫 번째를 상대하는 역이니까요. 그래도 ‘은교’ 때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끝까지 설경구 선배를 배려하고 연기에 임하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죠.”
 

영화 '나의 독재자' 이해준 감독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진행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나의 독재자’의 소재는 2007년도에 보도된 짤막한 신문 기사에서 시작됐다. 당시 김일성을 연기한 대역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영화 소재로 생각한 이해준 감독은 사실 타고난 이야기 꾼이다.

지난 2002년 ‘품행 제로’의 각본을 쓰면서 영화계에 발을 들인 그는 2년 뒤 ‘안녕! 유에프오’ ‘아라한 장풍대작전’(04) ‘남극일기’(05)를 거쳐 ‘천하장사마돈나’(06)의 각본과 메가폰을 맡으며 감독 명함을 손에 쥐었다. 한강에 뛰어들었다가 무인도에 갇혀버린 남자와 히키코모리 여자의 만남을 그린 ‘김씨표류기’(09) 역시 이해준 감독의 대표작. ‘끝까지 간다’의 각색도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해준 감독은 영화 전공이 아닌 서울예술대학교 광고창작과 출신이다.

“광고를 배우고 났더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라면 당장 고민하고 쓸 수 있으니까 시작했죠.”

메가폰을 잡았지만 작품 간에 텀이 긴 것도 사실이다.

“진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음번에는 쉬지 않고 일하리라 다짐했죠. 영화라는 게 한 편을 완성하고 고민하는 순간 몇 년이 훅 가거든요(웃음). 다음 작품으로는 장르가 먼저인 영화를 하고 싶어요. 장르에 맞춰진 영화요.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웃음).”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찬 이해준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