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독재자’에 설경구는 없었다
2014-10-24 15:23
특수분장 계보를 살펴보면 영화 ‘미녀는 괴로워’(06)의 김아중, ‘이끼’(10) 정재영, ‘은교’(12) 박해일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2014년 10월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제작 반짝반짝영화사)의 설경구가 특수분장 연기에 도전했다.
그런데 좀 특별하다. 온몸에 전신성형을 받기 직전의 매우 풍만한 얼굴없는 가수 역할을 한 김아중,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비밀스러운 이장의 정재영, 당대의 시인이자 열일곱 소녀 은교(김고은)를 품고 싶은 이적요를 연기한 박해일. 다들 자신만의 연기를 펼치면 되지만 설경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잘 알고 있는 북한의 김일성, 그 김일성을 연기하는 연극배우 김성근으로 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오디션을 보고 1차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성근. 그러나 그가 끌려간 곳은 중앙정보부, 즉 ‘중정’이었다.
영문도 모른채 고문을 당한 성근에게, 중정 요원들은 의례 그렇듯 “얼른 잘못한거 말하고 집에 가자”라고 꼬이지만 성근은 “무대에서 제대로 못하고 아들에게 창피함을 준 죄”라고 읍소했다. 오계장(윤제문)은 성근의 끈기에 반해 그를 캐스팅한다.
결국 자신의 배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월북까지 감행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태식은 아버지 성근에게 실망하고 연락을 끊는다.
다단계 MD로 강의(?)에도 나서는 태식은 사채를 잘못 써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아버지 성근이 입원해 있는 요양원에서 몇 번이나 연락이 왔지만 가족을 떠났다는 미움에 찾지 않는다. 하지만 사채업자(배성우)의 위협 속에서 아버지와 재회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신문기사를 접하면서다.
아버지의 인감으로 땅을 처분하고 사채업자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었던 태식과, 김일성에 빙의돼 “저 갓나, 총살시키라우”라고 북한말을 쓰는 성근과의 위태로운 동거가 시작된다. 여기에 태식을 짝사랑하는 여정(류혜영)이 가세해 파출부를 자처한다.
관객들은 ‘나의 독재자’에서 배우 설경구가 아닌 무명의 단역배우 김성근을 볼 것이다. 설경구를 모르는 새터민이라면, 분장한 그의 모습에 경례를 할지도 모른다. ‘나의 독재자’에 설경구는 없었다.
박해일 역시 최고의 연기를 펼쳤다. 젊은 시절 지인의 꾐에 넘어가 발을 들였던 다단계의 경험을 십분 활용해 맛깔나게 연기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던, 아버지의 진심을 알고 난 후의 태식의 감정 변화는 박해일을 위한 지문이었다.
악역전문 배우 윤제문은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오계장’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너무나도 완벽해 악역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런 연기력이라면 멜로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을까?
이병준이 설경구에게 연기를 지도하는 장면은 중독성이 강하다. “짜~장~면” “팔~보~채” “탕~수~육”이라고 발성을 하는 신은 KBS2 ‘개그콘서트’에서 패러디할 만 하다.
‘잉투기’를 통해 단박에 충무로 차세대 주역으로 떠오른 류혜영은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소화했다. 튀지 않는 무난한 연기로 태식의 짝사랑 역을 연기했다. 태식의 심경이 변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인물로 제 몫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면 좋은 ‘나의 독재자’는 오는 30일 15세 이상 관람가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