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시를 읽다(23)] 홍콩의 중국화 ‘빛과 그림자’ (下)
2014-10-15 07:00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중국과 영국 간 홍콩 반환 협상은 조차만기일(1997년)이 다가오기 십여년 전인 1982년 9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직접 베이징을 찾아 덩샤오핑(鄧小平)을 만났다. 영국은 주권은 중국에 반환하되 통치는 영국이 계속하려 했으나 중국은 일국양제(一國兩制)의 항인치항(港人治港) 원칙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되 향후 50년간 홍콩 자치에 의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생활양식을 허용할 것이라며 강경 대응했다. 지리한 협상 끝에 1984년 12월 양국은 1997년 7월 1일 홍콩의 주권 반환 후 50년간은 현 체제유지를 골자로 하는 예비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국으로의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은 앞날이 불안했다. 1980년대 후반 홍콩에서 퇴폐적이면서 음산한 누아르 영화가 유행한 것도 당시 홍콩인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1989년 6월 발발한 톈안먼 사태는 이를 더욱 부추겼다. 이에 영국은 그간 미적지근했던 홍콩 민주화 정치개혁을 돌연 추진해 기본권법을 제정하고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대폭 확대한 정치개혁안을 발표, 중국을 견제했다. 이 같은 영국과 중국간 홍콩을 둘러싼 신경전은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 직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홍콩은 세간의 우려를 뒤엎고 중국 대륙경제 발전의 후광을 등에 업고 눈부신 발전을 이뤄냈다. 중국은 홍콩을 경제개발의 모델과 외자유치의 창으로 삼았다. 미국 경제지 ‘포춘’이 ‘홍콩의 사망’이라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특히 홍콩은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 대표적인 국제금융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 7월말 기준 홍콩에 모두 156개 은행 영업중이다. 전 세계 100대 은행 중 70개가 홍콩에 아시아 본사를 두고 영업 중이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푸어스는 홍콩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 증시도 중국 대륙 기업의 발전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현재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모두 1700여개. 이중 중국 본토 기업이 절반 가량인 800여개다. 1997년 6월에만 해도 본토기업 수는 고작 83개에 불과했다. 특히 본토 기업의 기업공개(IPO)열풍에 힘입어 지난 2009~2011년 홍콩 증시 IPO는 거래액 기준 3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3년부터 중국인의 홍콩 개인 관광도 허용되며 홍콩 관광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97년 홍콩을 방문한 중국 본토 관광객 수는 고작 236만명이었으나 지난 해 1~10월에만 모두 3350만명이 홍콩을 방문했다. 특히 현재 홍콩 전체 방문객 수의 4분의 3이 중국 본토 관광객일 정도로 홍콩 관광산업을 중국이 먹여 살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홍콩 경제가 점차 ‘중국화’ 되어가면서 부작용도 커졌다. 환경오염, 빈부격차, 물가폭등, 취업난 등 사회 문제가 이슈로 대두됐다. 중국 부유층의 홍콩 부동산 투자 등으로 집값 등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홍콩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었다. 홍콩 경제가 중국에 예속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중국인의 원정출산, 분유싹쓸이, 부동산 투기 등에 뿔난 홍콩 주민들은 중국인이 홍콩의 자원을 싹쓸이하고 있다며 ‘메뚜기떼’라고 비하하며 반중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간 홍콩 개입을 자제해왔던 중국도 2003년 홍콩에서 정치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자 차츰 홍콩 통치의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은 홍콩의 민주화가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도를 넘는’ 민주화 요구에 선을 긋고 홍콩의 헌법인 ‘기본법’ 해석권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결정토록 했다.
현재 홍콩의‘우산혁명’도 사실상 홍콩 시민들이 2017년 행정장관 선거에서 후보 자격을 제한하지 않는 '완전한 보통선거'를 구호로 외치면서도, 안으로는 중국화 되어 가는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을 안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