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권혁기 기자 = 배우 강예원(34)은 천만배우다.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해운대’는 전국에서 1132만 4400여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강예원은 영화를 보는 안목이 있는 배우로 손꼽힌다.

‘1번가의 기적’부터 ‘하모니’ ‘헬로우 고스트’ 등 연기력과 함께 작품을 선택하는 폭이 넓고 보는 눈이 좋다. ‘조선미녀 삼총사’는 옥에 티로 남을 전망이지만 기타 작품들은 나름 흥행에도 성공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강예원이 ‘내 연애의 기억’(감독 이권·제작 아이엠티브이)을 선택했다.

원래 ‘내 연애의 기억’은 다양성영화, 즉 독립영화 수준으로 계획했던 영화다. 초기 제작비용도 매우 적었다. 그러나 영화 시나리오가 강예원의 손에 들어가면서 버짓(budget, 예산)이 커졌다. 강예원은 남자 주인공에 송새벽을 추천했고 송새벽도 흔쾌히 출연을 결정하면서 지금의 ‘내 연애의 기억’이 탄생했다.

사실 강예원의 주변 사람들 중 다수는 ‘내 연애의 기억’을 만류했다. 적은 예산의 영화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연기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소속사 SM C&C는 작품 선택 폭이 넓은 매니지먼트였기에 그런 제안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예원은 고집을 부렸다. 왜일까?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강예원은 “시나리오가 정말 좋았다”고 회상했다.

“영화는 시나리오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이야기가 좋지 않으면 어떤 배우든 영화가 잘 안되죠. 물론 좋은 감독님도 필수고요. 좋은 시나리오에 맞는 배우가 캐스팅이 되면 빛이 난다고 생각해요. 시나리오의 힘이 연기력에 대한 칭찬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좋은 시나리오에 감독님이 잘 연출해주셔서 연기하기가 더 수월했어요.”

그만큼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 출연했으니 연기가 절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강예원은 메소드 연기를 펼쳤다.

강예원이 연기한 은진(강예원)은 사실 남자 운이 없다. “처음이라더니 왜 피가 안 나느냐”라고 외치는 고등학교 시절 일진과 헤어지고 만난 대학생 오빠는 군대에 가더니 다방 종업원과 눈이 맞아 말뚝을 밖아 버렸다.

좀 더 성숙한 사람을 만나보자는 생각에 대학 교수와 연애를 했지만 알고 보니 유부남이었다. 교수의 아내에게 머리를 뜯겨 아직도 원형 탈모가 있다는 슬픈 얘기다.

그러다 만난 락커 연하남은 어린만큼 아주 개방적인 연애 가치관의 소유자로, 다른 여자와 만나는 모습에 헤어져버렸다. 영화 감독도 사귀었지만 여배우와 스캔들이 나더니, 결혼까지 발표한다.

6번째로 만난 직장 상사는 더했다. 틈만 나면 ‘오피스 성적 판타지’에 자신을 끌어들이더니 “너 나랑 결혼할 생각이었어? 너 쿨한 여자잖아. 너도 그냥 즐긴거 아니야?”라며 이별을 고했다. 그러자 은진은 6번째 연인에게 물을 시원하게 뿌리고 떠난다.

우연히 만나 연인이 된 현석은 ‘까면 깔수록 비밀이 쏟아지는 남자’다. 다 안다고 생각한 남자가 알고 보니 비밀 투성이다.
  강예원의 평소 성격과는 좀 다른 캐릭터다. 강예원은 “적극적인 성격은 있지만 남자한테 추하게 구는 편은 아니다”라면서 “그럴 용기도 없다. 자존심도 강한 편이라 오히려 남자에게 비밀이 있다고 하면 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강예원은 친구를 적극 활용(?)했다.

“친구 중에는 싸우기 시작하면 끝까지 친구들이 많았거든요(웃음). 하소연도 많이 들어주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어떤 게 남녀관계에서의 ‘화’구나라고 생각했죠. 저는 충고를 해주는 편인데 어쩔 때는 그런 친구들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어요. 나를 다 내려 놓고 자기 감정을 배출한다는 게 사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거잖아요. 사랑 때문에 울고 불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번에 연기지만 간접경험을 했더니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강예원이 몰입해 의도치 않게 나온 장면들을 이권 감독은 모두 반영했다. 현석에 대한 불신으로 뭔가 생각을 하는 장면에서 자기도 모르게 발로 자동차를 차는 장면이나 현석을 용서하고 후배 소영와 동생 은결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뒤로 손짓을 하는 신들이 그대로 살았다. 심지어 시사회 때는 “내가 저런 말을 했어?”라고 놀랄 정도였다. 그만큼 은진에 동화됐다.
  하지만 강예원은 집요한 여자보다 쿨한 남자에 가깝다. 스스로를 더 사랑하고 사랑받는 쪽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또 ‘사랑은 의리’라고 말한다.

“배려도 사랑”이라는 그는 “사실 저는 집착이라는 단어를 무서워한다. 집착하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내 연애의 기억’이 딱 들어온거다. 더 심한 집착도 서슴치 않는 역할도 해보고 싶다. 추해보이는 그런 역할”이라고 작은 소망(?)을 드러냈다.

그래도 1순위는 시나리오다.

“‘내 연애의 기억’은 제가 죽어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정한 작품이에요. 확신이 들었죠. ‘내 연애의 기억’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시나리오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저는 ‘내 연애의 기억’이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돈을 안 받고도 찍고 싶다는 말까지 했어요. 이런 보석 같은 시나리오라니. 관객의 눈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작품 선택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 강예원이 선택한 영화는 필수로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