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앞에 놓인 DJ의 길과 손학규의 길
2014-08-04 00:42
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열에 일곱을 내줄 자세로 야권 단결에 임하라.” “지금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책임 정치의 자세에서,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과 한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그렇다.”
전자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역사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유훈이고, 후자는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민주당을 이끈 손학규 전 대표의 지난달 31일 정계 은퇴의 변이다.
60년 전통의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위기다. 7·30 재·보선 패배 이후 당 안팎에서 “김대중·노무현 정신 빼고 다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7·30 재·보선 이후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한 김무성호(號)와는 달리 새정치연합은 ‘문재인 등판론’, ‘세대교체론’ 등 세력 구도와 ‘중도 강화론’, ‘진보 강화론’ 등 노선 투쟁만 난무한 상황이다.
2007년 대선부터 시작된 야권의 참패는 민주개혁 세력의 분열과 사회 경제적 대안 마련 실패 등 구조적 원인과 야권 연대에만 매달리는 전략·전술의 부재가 맞물린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당에 누적된 적폐를 타파하지 않고는 혁신 동력조차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권발(發) 정계개편의 핵심은 야권 대통합의 실현 여부다. 2012년 총선 직전 단행된 민주당·시민통합당·한국노총 간 야권 중통합을 넘어 민주개혁진영과 진보진영이 전면전으로 결합하는, 이른바 빅텐트 구축이다.
이는 선거 막판 깜짝 이벤트식으로 이어지는 야권 연대의 시효성 논란과 무관치 않다. 범야권은 선거 연대를 앞세워 권력 탈환에 나선 2012년 총·대선과 7·30 재·보선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일각에선 범야권이 대권 탈환과 수성에 각각 나선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대와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선거 전날 파기) 등의 장밋빛에 심취한 나머지 개혁 공천과 민생경제 공약 제시 등을 실기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대선평가위원회의 ‘18대 대선 평가 보고서’에는 “야권 후보 단일화만 되면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에 4·11 총선에서 공천 실패로 패배한 뒤에도 같은 계파 지도자를 당 대표·대통령 후보로 뽑으면서 계파 갈등의 부작용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명시돼 있다.
2016년 의회 권력과 2017년 정권 교체를 앞둔 범야권이 빅텐트 안에 한데 모여야 한다는 당위성도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한다.
나눠먹기식 야권 연대 대신 ‘당 대 당’ 통합을 통해 야권 재편을 꾀하자는 것이다. 현재 정의당과 통합진보당, 노동당 등 진보정당도 존재 이유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야권발 정계 개편이 대통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DJ는 유언에서 “열에 일곱을 내줄 자세로 야권 단결에 임하라”고 촉구하는가 하면, 2007년 4월 민주당 당시 박상천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단일정당이 최선이고, 안 되면 단일 후보로 가야 한다”며 “정 안 되면 (범여권이) 후보 연합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DJ식 대통합은 진보정당의 독자적 생존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많아 야권발 정계 개편이 본격화될 경우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중통합 이룬 손학규, 마지막 한 일은 ‘계파 패권주의’ 타파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계를 은퇴한 손 전 대표도 새정치연합 전신인 민주통합당 출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2010년 10·3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손 전 대표는 19대 총선 직전 야권 대통합을 승부수로 던졌다.
그의 통합 승부수는 정치권 외곽에 머물던 새정치연합 문재인 의원과 문성근 전 대표 권한 대행, 김기식·이학영 의원 등이 시민통합당을 매개로 제1야당으로 진입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당시 진보진영이 통합진보당을 출범시키며 제3 노선을 추구, 손 전 대표의 통합은 야권 중통합으로 격하됐다.
손 전 대표는 마지막 대권 도전이 된 2012년 9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 서울지역 순회투표 당시 연설에서 “누가 뭐래도 야권 대통합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야권 대통합으로 우리는 국민들로부터 지지와 기대를 받고 정권교체에 대한 희망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야권 대통합이 되었으니 제 역할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며 “새 지도부의 구성을 원혜영 임시 대표에게 맡기고 저는 조용히 지리산 자락으로 내려갔다. 민주통합당의 지지율이 쭉쭉 뻗어 올라 새누리당을 10% 이상 앞섰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손 전 대표의 마지막 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재 새정치연합에 내재돼 있는 병폐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총선 승리의 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이 ‘문재인 대세론’으로 결정되던 날까지 그는 친노의 계파 패권주의를 꼬집은 것이다.
실제 손 전 대표는 민주당을 입당한 2007년 이래 7년 동안 ‘한나라당 주홍글씨’에 시달렸다.
그는 2012년 7월 GT(김근태 상임고문)계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가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내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김근태 의장이 ‘학규(는)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새정치연합의 혁신의 길은 통합의 정치와 계파 프레임 단절, 시대정신과 민생정치의 실현에 달린 셈이다.
손 전 대표도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가진 정계 은퇴 기자회견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린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스럽다”며 “저의 정계 은퇴를 계기로 새정치연합의 당원과 의원들이 새로운 각오로 혁신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혁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