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호, 시청률 보장 없던 '정도전' 선택한 진짜 이유

2014-06-16 11:24

'정도전'에서 정몽주 역을 맡았던 임호[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이예지 기자 =  11.6%(닐슨코리아 기준·이하 동일)로 출발했던 KBS1 대하드라마 '정도전'(극본 장현민·연출 강병택)의 시청률은 마흔여섯 번 방송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떨어지지 않고 상승했다. 최고 시청률 19.8%. 그것을 넘어서는 철저한 역사 고증과 배우들의 명품연기는 명실상부 '정도전'을 최고의 드라마로 만들었다.

'정도전'이 시청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역사드라마라는 점이다. 충실한 고증을 거쳐 탄생한 '정도전'은 정치 세계의 이면을 드러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6·4 지방선거의 영향으로 평가는 더 높아졌고, 시청자 반응 또한 더욱 뜨겁다.

종영까지 단 4회만을 남기고 있는 '정도전', 공감과 여운을 남긴 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정도전'에서 죽음으로 마지막을 맞이한 배우 임호를 지난 9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만났다.

임호는 정도전(조재현)의 막역지우에서 최강의 정적으로 변하는 마지막 고려인 정몽주 역을 맡아 시청자와 호흡했다. 친명파의 기수이자 외교의 달인 정몽주는 혁명의 태풍에 맞서다 지조와 절개의 화신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
 

'정도전'에서 정몽주 역을 맡았던 임호[사진=남궁진웅 기자]

그가 '정도전'을 선택한 건 교훈과 설교의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1993년 KBS 공채 15기로 데뷔한 이후 21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게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 '쉼'이 필요했다.

"서인석, 조재현, 유동근 등 내로라하는 대선배들과 함께 호흡하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는 임호는 요즘 사람들이 외치는 '힐링'을 몸소 체험했다. '정도전'과 만나는 모든 시간이 그에게는 '힐링 타임'이었다.

"선배들이 제 앞에서 보여준 연기가 힐링이었어요. 사람들이 '연기의 신', '연기의 선수'라고 하잖아요, 정말 그랬어요. 그분들과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 그분들의 연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죠. 말 그대로 힐링이었어요."

연기의 맛을 알게 된 1996년 '만강'에서의 임동진의 눈빛을 잊지 못하는 임호는 '정도전'을 통해 다시 한 번 그 눈빛을 확인했다. 그가 기억하는 임동진의 뜨거운 눈빛이 유동근에게도 서려 있었다.

"임동진 선배님이 '만강아~' 하고 부르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때 '아, 저게 배우의 눈이구나'를 느꼈어요. 그때 그분의 눈을 보면 그냥 눈물이 났었는데, 이번 작품에서 유동근 선배랑 연기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느꼈죠. 눈물 참느라고 힘들었어요."

유동근과 서로 다른 작품으로 맞붙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이 방송될 때 저는 경쟁사 '대왕의 길'에 출연했죠. 선배가 이방원 역을 너무 잘하는 바람에 제 드라마가 고전했었고요, 하하. '욕망의 바다'에서도 잠깐 만났었는데, 제대로 연기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죠. 이번에 한을 풀었고요. 좋은 배우들과 연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임호에게 '정도전'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다. 시청률이 보장되는 미니시리즈나 주말드라마에 출연할 수도 있었던 그가 퓨전사극이 떠오르면서 침체기에 빠진 대하사극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제대로 연기하는 선배들과 같은 공간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정리하고자 했던 그에게 '정도전'은 오래도록 기억될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시청률이야 잘 나오면 좋죠. 하지만 그건 저희가 잘해서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50%에 육박했던 '대장금'도 해 봤지만, 시청자의 요구와 작품의 방송 시기가 잘 맞았던 것뿐이에요. 시청률보다는 잘 만든 작품에서 연기하고 싶었어요. '정도전'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위인'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정몽주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던 임호, 그는 아직 작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도 "천천이 벗어나겠다"고 말하는 그가 '정도전'을 통해 품을 '힐링'으로 향후 시청자에게 어떤 '힐링 타임'을 선사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