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친기업 정부는 어디에…

2011-08-18 17:55

(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4년 전 ‘친기업 정부’란 말이 생겨났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 기업인이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국민은 역대 최초의 기업인 출신 대통령을 뽑았다. 기대감은 높아졌다.

현재,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그들'은 친기업이란 옷을 벗었다. 정치권과 사회를 아우르는 분위기는 친기업은 커녕 반기업에 가깝게 돌변했다.

발단은 물가였다. 원자재값 상승으로 인해 서민물가가 치솟자 유통사, 그리고 정유사를 ‘잡기’ 시작했다. 정부는 정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고 정유사와 주유소에 대해 가격 압박에 들어갔다. 권위 있는 정부 고위층 인사가 “세금 탓 하지 말라”며 노골적으로 재계를 나쁘게 몰아갔다. 졸지에 서민을 괴롭히는 악덕 기업들이 됐다.

재계의 시련은 계속 됐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정치권과 국회의 압박으로 18일 청문회에 참석했다. 어려운 조선업계를 살리고자 나간 출장은 도피가 됐고, 정리해고는 노동 탄압이 됐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방관, 아니 부추겼다. 정리해고에 대한 가치판단을 떠나 지금까지 ‘불법 파업’이니 ‘법치 확립’이니 하며 호들갑을 떨던 정부는 없었다.

앞선 17일에는 5공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도 벌어졌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중소기업 상생경영과 관련한 지식을 모르자 졸지에 “먹통이시다”란 호통을 들었다. 재계 대부분이 꺼리던 전경련 회장이란 중책을 맡아, 해외 출장도 포기하고 청문회에 참석한 결과다.

재계를 편들자는 게 아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악덕 기업주'가 된 게 아니다. 예전부터 지금껏 큰 변화 없이 경영 활동을 해 왔다. 정부의 요구에 구색을 맞춰 왔고, 또 진심이든 형식적이든 사회공헌 활동에도 나섰다. 그런데 정치권의 ‘변덕’에 갑작스레 고용창출의 주역에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더욱이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한시가 바쁜 상황에서 정치권의 눈치까지 보게 됐다.

물론 재계의 개혁은 필요하다. 서민과 중소기업을 살려야 한다. 부의 대물림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재계 죽이기’ 공론화는 의도가 불순하다. 논제도 명확치 않다. 내년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야권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할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친기업 정부’의 정책은 5년도 채 못 갔다. 역시 정치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1970~1980년대 역대 최장 기간인 10년 동안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경영을 하면서 가장 무서운 건 정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