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진화] <상> 현대·전통 만나니 멋스러움 더해… 아파트·병원도 한옥바람

2011-04-06 17:16
'우리 옛 것' 재조명… 전통보전에 첨단설계 접목 '눈길'

지난 2009년 준공된 인사동 퓨전한옥 '미헌'. 건물의 1층과 2층 후면은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2층 전면은 한옥식 목구조로 지어졌다.(왼쪽) 2층 내부 천장에 나무 서까래와 콘크리트 천장이 맞닿아 있는 모습.(오른쪽) <사진제공=북촌HRC>

(아주경제 이혜림 기자) 4일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 75번지. 1층 검정벽돌 건물 위에 앉은 2층 한옥은 목구조 방식의 기둥과 보, 한식기와까지 영락없는 전통한옥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뒤 쪽은 철제콘크리트 건물과 연결돼 있었다. 2층 내부 천장에 나무로 된 서까래와 콘크리트 천장이 맞닿아 있는 모습은 한옥과 양옥의 경계를 허무는 느낌이었다.

이 건물은 3년 전만해도 2층 양옥 상가였지만 2009년 '미헌'이란 이름의 퓨전한옥으로 다시 태어났다. 현재 1층은 옷가게, 2층은 궁중 장신구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당시 이 건물의 설계와 시공을 맡았던 북촌HRC 김장권 대표는 "이 건물이야 말로 한옥과 양옥의 경계를 뛰어넘은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전통보전은 물론 첨단 설계기법 접목

최근 친환경 건축 바람과 '우리 옛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이 재조명되고 있다.

목구조·한식기와 등 전통한옥의 성격을 잃지않고 도시에 적응해 새로운 주택 유형이 된 도시형 한옥에서 첨단 건축공법과 결합된 현대 한옥, 내부에 한옥형 디자인을 도입한 한옥 아파트까지. 한옥은 다양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단지 신라밀레니엄파크 내 한옥호텔 '라궁'은 한옥을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지하 1층~지상 2층 1만6525㎡ 규모에 16채의 한옥 독채를 갖춘 이 호텔은 한옥식 목구조로 지어졌다. 56㎡정도 되는 각 객실은 온돌과 누마루·안마당 등으로 구성돼 전통한옥의 모양새를 갖췄다.

설계 단계에는 3차원 설계 시스템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건물 정보 모델링)을 도입했다. 첨단 공법을 이용해 한옥건축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히는 비싼 공사비를 절반가량으로 줄였다.

'라궁'같은 숙박시설을 비롯해 공공기관·교육시설·사무실·병원 등 한옥의 쓰임새도 다양화되고 있다.

1940년대 지어진 'ㄷ자' 모양의 전통한옥을 리모델링한 '혜화동사무소' 한옥청사와 인사동 퓨전한식당 '민가다헌', 가회동 'e믿음치과' 등은 이미 지역 명소로 손꼽히는 한옥건축물이다.

명성왕후의 후손인 민병옥의 저택 민병옥가를 보완 설계한 개량한옥인 '민다가헌'은 4개의 방을 각각 다른 실내 공간으로 구성했다. 'H'형 구조로 복도와 테라스를 갖추고 있어 현대와 전통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가회동 'e믿음치과'에서는 탈착식 투명 천장을 씌운 안마당이 환자 대기실로 쓰인다. 진료 의자에 누우면 눈에 들어오는 천장 서까래와 치과 특유의 소독약 냄새를 대신하는 풀냄새가 환자들의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준다는 평가다.

종로구 통의동에는 한옥 두 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맞댄 사진 갤러리 '류가헌'이 있다. 132㎡ 한옥은 갤러리로, 99㎡ 남짓한 작은 한옥은 사무실로 쓰인다. 'ㄱ'자형 전시공간 밖에는 긴 툇마루와 잔디마당도 있어 관람과 휴식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또 이달 말에는 서울시 구로구가 총 사업비 14억8500만원을 들여 지은 지상 2층 규모의 한옥어린이도서관을 개관한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한옥 인테리어가 아닌 한옥식목구조로 설계된 진짜 한옥 도서관이다"며 "어린이들과 지역주민들이 전통한옥의 우수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문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 전통 한옥 접목한 아파트도 인기

최근에는 한옥형 디자인을 적용한 아파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시 팽성에 위치한 늘푸른 오스카빌 아파트는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설계한 사랑방 천장과 대청마루 느낌의 거실 등 한옥형 인테리어를 적용해 눈길을 끌었다. 대림산업은 서울 중구 신당동 e편한세상 아파트 118㎡의 다용도실 문을 격자 창호와 한지로 마감한 인테리어를 선보인 바 있다.

현대건설도 인천 검단 힐스테이트4차 아파트 115㎡에 나무색의 마감재와 거친 느낌의 화강석을 벽면 아트홀로 사용해 전통의 멋을 담았다. 거실 한 쪽에 대청마루 형식의 다실(茶室)이 위치하며, 침실의 화장대도 전통 격자무늬로 디자인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사랑방형·한실형·안마당형·다실형의 4가지 한옥형 주택 평면을 개발했다. 단위평면은 콘크리트벽식으로 공간을 고정했던 기존의 아파트와 달리 나무 기둥과 보, 도리 등을 이용한 한옥식 가구법을 따랐다. LH는 이 평면을 3차 보금자리주택인 하남 감일지구 7블록 약 300가구에 우선 시범 적용한 뒤 점차 확대할 계획이다.

국민대학교 실내디지인학과 김개천 교수는 "경제성장과 함께 지(知)적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에 살면 더 여유있고 멋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친환경 웰빙 효과와 한옥의 절제미가 주는 정서적 안정, 현대식 생활공간의 편의성 등이 최근 한옥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