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프런티어] '한국 유니세프의 어머니' 박동은 사무총장

2011-02-14 16:15

"어린이와 여성에 대한 투자와 개발 사업이 사회 전체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박동은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사무총장(76·사진)은 최근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힘주어 말했다.

현재 사무총장을 5번 연임하고 있는 박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유니세프의 산증인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43년간 유니세프의 도움을 받던 수혜국에서 도움을 주는 공여국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

1988년 한국이 전세계 156개 수혜국에 포함돼 있을 당시 유니세프대표부 대외담당관으로서 일을 시작한 후 94년 유니세프가 36개 선진국들의 모임인 국가위원회로 들어가는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박 사무총장은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나라는 유니세프 역사상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며 당시 유엔집행이사회에서 큰 환영을 받았다고 전했다.

“첫해 모금액을 300만 달러로 하겠다고 하자 많은 박수를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첫해, 목표액을 뛰어넘는 360만 달러를 모금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박 사무총장은 “처음에는 모금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금이라고 하면 연말 구세군 냄비만 떠올리는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애들이 많은데..’하던 사람들이 차츰 ‘우리가 우방의 도움 없이 어떻게 이렇게 됐겠냐. 당연히 도와야지’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그는 민간 모금에 대한 방식도 많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5가지 사회지도층 그룹을 만들었다. 유니세프를 위한 문화예술인 클럽, 사립학교 교장 클럽, 언론인 클럽, 아동권리를 위한 변호인 클럽, 어머니클럽이 그것이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으로 점점 불어가던 모금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의 도움을 받던 1997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때 280만 달러까지 떨어진 모금액은 1999년도부터 다시 조금씩 개선돼 지난해는 (2009년 모금액) 2500만 달러를 모아 뉴욕 본부에 보냈다고 한다.

박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모금액이 36개국 중 10위로 진입했다”며 “자동이체 후원회원만 20만 명”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가장 보람있었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156개국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해 현장 출장을 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금만 하고 직접적으로 개발도상국을 돕는 건 본부지만 우리가 뉴욕으로 보내는 모금액 중 20%를 재량권으로 줍니다. ‘몽골의 교육사업을 돕겠다’는 식으로 나라와 프로그램 계획을 세워 갈 수 있는데 자주 가지는 못해요. 1990년대초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그곳의 어린이들이 줄을 서서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데 내 어릴 때가 생각나는 거에요. 어렸을 때 미국이나 유엔에서 오면 환영하면서 도와달라고 했던 기억 말이지요.”

박 사무총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모금액을 그들에게 직접 주진 않아도 그걸로 학교를 지었다거나 발전사항을 직접 가서 보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과거와 달리 최근엔 유니세프가 교육 사업을 위해 학교를 짓는 등의 기초적인 사업보다는 교사 훈련이나 커리큘럼 개발 등 질적인 차원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박 사무총장은 또 유니세프가 각국 어린이들의 생명을 크게 구한 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백일해, 천연두 등 6가지 기초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은 생후 1년 안에 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1970년대 전세계 아동 접종현황이 5%밖에 안됐으나 유니세프가 요즘 북한에서도 국가면역개발 (NID·National Immunization Development) 사업을 통해 85%까지 올려놨어요.”

또 그는 눈에 보이는 비용이 다가 아니라는 점에서도 일깨워줬다.

“예방접종을 위한 6가지 약이 기껏 몇천원밖에 되지 않지만 맞히는 비용은 16배나 더 들어요. 집앞에 보건소 같은 곳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네팔 같은 곳은 6일 걸려서 마을로 들어갑니다. 사람들이 50~100명씩 산속에 모여살기 때문이지요.”

그는 사회개발(Social development)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어린이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 사업이 사회 전체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