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新냉전'…결국 南·北韓이 풀어야
2010-12-21 16:59
[현지르포] 홍콩서 '평화 비행' 취재…홍콩·한국 금융인, 냉전 조기 해빙 갈망
동아시아에 신(新)냉전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1년 구 소련 붕괴 때까지 45년 이상 지속됐던 한반도 주변의 동서 냉전구도가 부활할 조짐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연평도 포격까지 ‘전략적 중립’또는 북한 포격에 대해 비난으로 일관해 왔던 러시아가 20일 돌연 한국측에 사격 훈련 중단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외교적 형세에 이른바 신 동서냉전 기류가 감돌고 있다. 여기에다 비록 지금은 괜찮지만 중국 대만의 양안(兩岸) 관계까지 흐트러질 경우 동아시아는 영락없는 1970년대 동서 냉전체제로 복귀하게 된다.
동아시아 외교전문가들은 “러시아의 군사 외교적 자세 변화는 동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를 꾀하는 동시에, 미국의 군사 외교는 물론 정치 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중장기 포석”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홍콩과 마카오 취재를 통해서도 동아시아의 미묘한 군사 외교적 갈등을 읽을 수 있었다. 동아시아의 신 냉전 구도를 예고하듯, 잔뜩 찌푸린 날씨 속에 홍콩행 마카오발 터보제트 페리는 지난 18일 동중국해의 거친 파도를 뚫고 쾌속 항진했다. 세차게 출렁이는 동중국해 파도사이로 간밤에 만난 중국측 유력인사의 정세 진단이 떠올랐다.
“한국군이 연평도에서 사격훈련을 자제해야 하지만, 설령 재개하더라도 북한은 포격으로 응사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세계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이라크 사태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한과 북한이 상호 양보와 협상을 통해 잘 풀어나가길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
연이어 홍콩 부두를 눈앞에 두고선 지난 15일 홍콩서 만났던 한국 외교관의 얘기가 귓전을 때렸다.
동아시아 냉전에 대한 우려는 다음날인 16일에도 이어 졌다. 아주경제와 홍콩 원후이바오가 공동 주관한 홍콩 주재 금융증권인 간담회에선 한국 금융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과 한국 간의 군사 외교적 냉기류가 오래 지속 될 경우 한국 금융기관들의 글로벌 도약에도 먹구름이 낄 것이다. 삼성 금융 부문이 300억 원을 들여 홍콩의 글로벌 금융 프로들을 스카웃하고, 금융 부문의 삼성전자화(化)를 도모하고 있다. 한국 금융기관은 IB(투자은행)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여기에는 홍콩과 중국의 금융기관들과의 선의의 경쟁과 상생이 긴요하다”
열띤 토론은 식사 후에도 계속 됐다. 그 만큼 동아시아 냉전의 조기 해빙을 갈망하는 염원이 한반도 통일의 염원만큼이나 뜨거운 듯 했다.
“아예 DMZ(군사분계선) 인근에 동아시아 평화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여기에 동아시아 평화 외교 센터를 지어 한중일 3국 정상회담 사무국은 물론 각종 국제기구와 국제 단체들을 입주 시킨다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 될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 보다는 중국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을 중국인은 우려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진 홍콩 사람들 까지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은 자신들의 경제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아시아 금융허브로 급성장 중인 홍콩으로선 ‘이대로’의 평화가 긴요하다.
16일 홍콩의 밤 9시. 주룽(九龍)반도 해변가에 위치한 인터컨티넨털 호텔. 1층 로비 라운지에서 바라본 아일랜드(해저터널로 연결된 섬)쪽 대형 빌딩의 네온사인에선 글로벌 브랜드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한국과 중국, 일본, 서구의 유명 브랜드 들이 홍보 ‘사국지(四國誌)’ 를 펼친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전쟁이 시시각각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한국에선 삼성전자와 LG, 정관장. 중국측은 하이얼, TCL, 차이나모바일, 중국은행. 일본에선 전통의 소니와 파나소닉,히타치, 토요다, 올림푸스. 서구에선 ING, 필립스가 각각 빛의 각축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세계의 관광객들을 상대로 밤의 홍보열전을 벌이는데, 기량 면에서는 삼성전자가 으뜸이다.
“홍콩과 중국의 글로벌 금융 강국에 대한 열망은 대단합니다. 아일랜드 초고층 빌딩인 IFC(국제금융센터) 앞으로 칼 모양의 중국은행(Bank of China) 건물이 보일 겁니다. 이것은 그 앞의 명당에 위치한 홍콩금융의 터줏대감 HSBC(홍콩상하이 상업은행)을 제압하겠다는 중국인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한금융지주 오창수 홍콩IB법인장의 말이다.
홍콩을 뒤로 하고 CX(캐세이퍼시픽) 416은 홍콩 공항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한 시간 남짓 쾌속항진하자 기내TV엔 항공 궤적이 중국과 대만 사이에 있었다.
얼마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기간 중 벌어졌던 대만인들의 소동이 떠올랐다. “한국이 대만에게 어쩜 이럴 수 있어요. 한국은 매번 그래요. 매번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대만을 대해요”.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대만의 미녀 금메달리스트 후보 양수쥔(梁淑君) 선수가 한국계 태권도 심판의 판정으로 베트남 선수에게 어이없이 패하자 대만인들은 분노했다. 한국 국기를 불태우고 한국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마잉주 대만 총통의 사태수습과 양수쥔 선수의 자제 촉구로 대만인의 분노는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대만인의 배신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이면에는 한국과 대만의 단교(斷交)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8월 24일. 서울 명동 대만 대사관에선 대만 국기가 내려오고 중화인민공화국 국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그날 아시아의 영원한 동맹으로 믿었던 한국의 배신에 많은 대만인들은 하얗게 분노의 밤을 지샜다고 한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 이후 대만은 40년 넘게 북한이 아닌 한국 편에서 정치, 군사, 경제, 외교적 우의를 지켜왔었다.
잠시 조는 사이에 취재팀끼리 ‘동아시아 평화 비행’이라고 명명한 항공 궤적은 저녁 7시 상하이 밤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홍콩과 도쿄, 서울을 제치고 동아시아 제1의 경제 도시로 우뚝 선 상하이. 세계 엑스포 역사의 신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상하이 엑스포. 푸둥(浦東)과 푸시(浦西) 사이로 흐르는 황푸(黃浦)강에는 한국과 중국의 슬픈 역사도 함께 흐른다. 상하이 임시정부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동아시아 식민지 전략에 맞서 싸운 한국광복군의 상흔이 어려 있다.
저 너머로 광시성(廣西省) 제1 상업도시 류저우(柳州) 임시정부 청사에는 20세기 러브스토리가 전해진다. 1944년 일본 항공기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로 대피하다 만난 한국 광복군 청년과 중국 처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는 지금도 그곳 중국인들의 가슴을 적신다.
황해로 들어서자 시베리아와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북서풍 탓에 ‘동아시아 평화비행’이 심하게 흔들린다. 황해의 북쪽에는 중국동북지역의 대표도시 선양이 자리잡고 있다.
1948년 11월 선양.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다. 중국 공산당의 린뱌오(林彪)가 이끄는 동북 인민해방군이 이 일대에서 장제스(蔣介石) 총통의 국민당군을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창춘, 지린, 하얼빈에 이르는 만주지역은 차례로 공산당 수중에 떨어졌다. 국민당군은 병력과 화력이 우세함에도 내부의 부정부패와 전략부재로 인해 대패했다.
1949년 10월 1일 중국 공산당은 베이징을 수도로 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마오쩌둥은 초대 국가 주석에 추대됐다.
만주전선의 승리에는 조선 공산당의 지원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기 10만 정과 화약, 배후 보급기지를 제공 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말로 끝난 상하이 엑스포의 북한 전시관에는 그 증표가 있었다. 초라한 조선관 한 켠에 놓여있는 의미심장한 화보의 끄트머리. 여기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 주석께서는 1946년 봄 마오쩌둥 주석의 특사로 평양에 온 동북국 부서기 천윈(陳雲)을 접견 하시었다.... 그는 무기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중국 혁명이 큰 시련을 겪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조선에서 정규 무력 건설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10만 정의 무기를 무상으로 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황색폭약도 생산해 보내 주셨으며...... 중국인민의 혁명 투쟁을 지원하는 것은 숭고한 국제주의적 의무다”
10만 정 무기는 일본군의 99식, 38식 소총이다. 올해 8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이렇게 언급했다. “김일성 주석은 중국 혁명 승리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북한은 중국 혁명의 혈맹인 셈이다.
잠시 중국과 북한의 질긴 인연을 생각하는 사이 CX416은 홍콩으로부터 3시간30분의 비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으로 접근했다. 기내엔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인근 연평도에서 한국 해병대의 해상사격훈련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밤 9시10분 ‘동아시아 평화비행’이 끝나고 취재팀이 인천공항 여객터미널로 나오자 황해의 겨울바람이 여간 매서운 게 아니다.
그리고 20일 오후 2시30분 해병대 연평부대가 해상사격훈련을 시작했다. 국방부는 1시간이 지나 “오늘 계획된 사격훈련은 사실상 끝났다”면서 지금은 추가도발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무렵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 “사격훈련 반대”를 발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긴급하게 열렸다. 유엔안보리는 중국과 러시아에 대응하는 미국과 일본, 서방세계간의 팽팽한 기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은 20일 오후 실시된 우리 군의 연평도 해상사격훈련과 관련,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고 밝혀 당장 공격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전세계의 외신들의 숨가쁜 타전도 20일 밤 9시를 기점으로 사그러 들었다.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21일 “북한의 본질적 태도 변화를 위한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는 남북한 간의 무력충돌에 안도해 하면서도 북한이 왜 대응공격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다.
미국의 전략정보 분석업체인 ‘스트랫포(www.stratfor.com)‘는 사격훈련이 있기 사흘전인 지난 17일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 대응공격이 없으리란 분석이 담긴 ’사격훈련과 한반도의 새 긴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었다.
스트랫포는 우선 북한은 불시에 공격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평양을, 성 김 미국 6자회담 특사와 제임스 스타인버그 미국무부 부장관이 각각 한국과 중국을 방문한 것을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남한이 이번에도 공격을 받을 경우 즉각 반격할 것을 우려했다는 것도 대응공격 하지 않은 이유로 지적됐다.
하지만 북한의 대응타격이 없었던 이유에는 중국의 강한 억지력이 작용했음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겉으론 북한과의 혈맹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에 북한 지지를 통해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게 중국의 심산이다. 그 어느 때보다 양국 정상간 긴밀한 핫라인이 가동되던 러시아가 돌연 사격훈련 반대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중국이 북한의 불장난을 억제하려는 이면에는 한반도 전쟁이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 되리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0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중화민족의 경제발흥이 무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평화가 깨질 경우 동아시아의 경제부흥이 어려운 점도 중국지도부의 고민을 깊게 한다.
동아시아의 역동성을 이끄는 리더그룹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중화권 경제협의체다. 미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G2국가, 중국이 선두에 서고 있다. 그리고 대만과 홍콩, 마카오가 뒤따르는 형세다. 글로벌금융 위기 속에서도 경제적 약진을 하고 있는 ‘경제 모델국가’들이 한국과 함께 포진해 있는 셈이다.
동아시아의 외환보유고만 보아도 이지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올해 8월말 현재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고 1위는 중국으로 2조4553억 달러다. 2위 일본은 1조701억 달러, 3위 러시아는 4763억 달러, 4위 대만은 3700억 달러, 5위 한국은 2854억 달러 규모다. 홍콩도 2614억 달러로 7위에 랭크돼 있다. 북한의 외환 보유고는 50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새 북한은 동아시아 경제권에서 존재감 없는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 정부가 원칙을 지키되 언제까지 북한의 배고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북한도 이제는 과거의 군사냉전구도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의 어엿한 주역으로 변모할 대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북한의 핵무기 위협과 파탄 경제를 동시에 해결 하려는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관계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DMZ 평화도시 건설은 21세기 동아시아의 번영과 평화를 가져올 초석이 될 것이다”
‘동아시아 평화비행’으로 명명된 이번 취재 기간 중 만난 동아시아인들의 한결같은 바램 이었다.
<홍콩, 마카오 = 강소영, 최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