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여전히 도요타가 무서운 이유

2010-11-12 01:06
일본 R&D 연구소의 '매뉴얼' 인상적

지난주 일본 도요타의 연구소 2곳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다. 올 초 전 세계적인 대량 리콜로 이미지를 실추한 도요타가 ‘우리 기술력은 아직 건재하다’고 어필하는 자리였다. 특히 중앙연구소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히가지후지연구소는 한국 언론에는 처음 소개되는 자리였다. 대량 리콜 덕분에 좋은 구경 한 셈이다.

사람을 보면 차가 알아서 멈추는 안전장치, 운전자의 습성을 파악하는 운동장 크기만한 가상 드라이빙 체험장, 100가지 이상의 충돌 현장을 재현해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실내 충돌시험장, 인체 충격 정도를 파악하는 ‘더미’(인형)와 이를 보완해 주는 ‘프로그램 속의 더미’ THums. 보는 것 하나하나가 놀라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도요타가 무섭다고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든 것을 완벽히 매뉴얼화 하는 일본 특유의 방식 때문이었다. 먼저 이 글로벌 미디어 초청 행사 자체의 짜임새. 15분 단위로 끊어지는 연구소 견학 일정은 이틀 동안 아침부터 저녁 6시까지 오차 없이 이뤄졌다. 국가별로 3개조로 나뉜 각국 기자들은 마치 ‘기계’가 된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일정의 첫 프리젠테이션부터 비범했다. 도요타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기술력을 어필할 지 궁금해 있던 기자들에게 한 첫 마디는 “먼저 비상 통로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긴급상황시 직원의 지시에 따라주십시오”였다. 휴대폰과 카메라를 금하고, 반드시 정해진 모자를 써야 한다는 얘기는 쉬는 시간마다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다.

빡빡한 일정에 지친 기자들은 마지막 날이 되자 “좀 대충대충하자”며 푸념을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물론 푸념은 푸념일 뿐 안내원은 가차없었다. 우리는 “휴식시간 1분 남았습니다”라는 말에 다음 체험장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같은 원리원칙대로의 방식이 미국의 한 자동차 사고를 전 세계적인 리콜로 끌고 가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식대로 하자면 ‘적당히’ 신속하게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도요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를 해소하려는 듯 하다. 신속한 조치마저 그들의 행동 매뉴얼 속에 넣어버리는 방식으로.

김형욱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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