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2·3위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합병 논의를 공식 개시한다. 세계 자동차업계가 전기차 전환, 자율주행 등으로 거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위기에 처한 양사가 합병을 통해 대응을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23일 NHK, 니혼게이자이(닛케이) 등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양사가 합병 논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닛산이 대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 역시 내달 1월까지 합병 참여 여부 결론을 내리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합병 논의의 최종 결론은 내년 6월께 나올 전망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 7·8위 기업인 혼다(398만대)와 닛산(337만대)이 합병하면 판매량이 735만대에 달하고, 미쓰비시자동차(78만대)까지 합류하면 800만대를 넘어서게 된다. 이 경우 도요타그룹(1123만대)과 폭스바겐그룹(923만대)에 이은 세계 3위 자동차업체로 올라서고, 현재 3위인 현대차그룹(730만대)은 4위로 밀리게 된다.
양사가 합병에 착수한 이유는 전기차, 자율주행 등 첨단 분야에서 미국 테슬라, 중국 BYD 등 경쟁업체들의 부상이 거센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닛산은 2024회계연도 상반기(2024년 4~9월) 이익이 93%나 급감한 가운데 지난달에는 전 세계 직원 13만명 중 7%에 해당하는 9000명 감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에 양사는 합병을 통해 첨단 기술 개발 비용을 분담하고 경영 효율화를 추진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양사가 합병함으로써 모든 분야에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시너지는 예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며 "자동차 산업의 지각 변동을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중요한 것은 하드웨어의 차별화가 아니라 스마트화와 전기화이다"라고 강조했다.
혼다와 닛산 합병 논의 소식에 닛산 최대주주인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주 블룸버그는 르노가 닛산의 경쟁력 상승을 기대하면서 혼다·닛산 합병에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울러 르노 지분 15%를 보유한 프랑스 정부 역시 이번 합병으로 인한 지분 변화 여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로이터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이 관계자는 양사 합병에도 불구하고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에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프랑스 정부는) 르노가 보유한 닛산 지분이 최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은 지난 20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이번 합병 논의와 관련해 닛산이 "패닉(공황) 모드"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합병 논의를 "(닛산의) 절박한 조치"라면서도 "솔직히 말하자면 양 기업 간 시너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실용적 조치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곤 전 회장은 일본에서 배임 혐의 등으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 2019년 12월에 전용기를 통해 가까스로 일본을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