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의 경제 읽어주는 남자] 혼돈의 정치, 혼돈의 경제

2024-12-08 12:10
  • 글자크기 설정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혼돈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는 온 국민을 불안으로 내몰았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밤 내려진 비상계엄령과 2시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 해제 조치, 7일 저녁의 탄핵안 표결 무산이라는 일련의 긴박한 일들이 역사로 남겠지만, 국민의 마음엔 상처로 남을 것이다.
 
미국은 ‘더 위대하게’를 외치는데, 한국은 ‘더 위험하게’ 내몰리고 있다. 트럼프 2.0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밀려오고 있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그 소용돌이를 잘 우회할지를 고민할 겨를도 없이 스스로 난파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치적 리스크가 장기화함에 따라 한국 경제에는 어떤 파장이 있을지 진단해 보고, 추가적인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대응책을 강구해야 할 때다.
 
원화 가치의 급락
한 나라의 통화 가치는 물건을 구매하는 사용 가치 그 이상을 의미한다. 비상계엄을 선언한 이후 원화 가치는 급락하기 시작하여, 2024년 12월 4일 새벽 약 0시 26분께 1446.5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던 2009년 2월 이래, 약 15년 만에 벌어진 이례적인 외환시장의 모습이었다. 마치 전쟁이 발생할 때처럼, 원화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고, 세계 금융시장은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쟁취하기 위해 내달린 바 있다.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함에 따라, 원화는 평가절하되고, 달러 보유 성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강달러가 아무리 뉴노멀(new normal)이라지만, 1400원대의 환율이 지속될 경우 수입 물가를 자극하고, 내수경기 부진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의 통화정책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된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외환 건전성 악화 등에 대한 우려도 경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1
[원달러환율 추이/ 자료 Trading Economics] 

 


한국 주식을 떠나는 외국인
주식 가치는 기업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뜻한다. 정치적 혼란은 기업의 성과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든다. 비상계엄령 폭풍이 증권시장에도 불었고, 외국인은 주식을 내던지고 급속히 빠져나갔다. 외국인은 비상계엄을 선언한 다음 날(4일) 4000억원, 그 다음 날(5일)에도 3000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한국 주식시장은 2024년 유독 조정을 많이 받았고, 유독 외국인의 순매도 기조가 강하게 이어진 터였는데, 정치적 대치 상태가 장기화할수록 다시 돌아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주식시장의 조정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후퇴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이 조정받는 사이, 정치 테마주 투기 움직임으로 개인의 매수세가 뒷받침된 것도 주식시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이 긴급하게 금융안정화 조치로 대응해서 그 여파가 덜했을 뿐이지, 한국 주식시장은 출렁였다. 한국은행이 파국을 막기 위해 진행한 비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규모가 하루 10조원을 넘어섰고, 금융위원회의 증시안정펀드,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으로 유동성을 퍼부었다. 혼돈의 정치가 장기화할 경우, 더 큰 규모의 유동성이 투입될 것이다. 쓰지 않아도 될 유동성이 쓰였다는 면에서도 탄식할 일이지만, 유동성을 퍼부어도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경우 대응 수단마저 사라지게 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까 두렵기도 하다.
 
바닥에 떨어진 국가 신인도, 신용등급 강등될까?
한강의 기적을 일궈온 경제적·정치적 국가의 위상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세계 모든 국가의 주요 언론 1면에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가 다뤄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 야당과 거의 지속적으로 정치적인 대치 상태”라고 보도했다. 군사·안보 동맹국인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 등 세계 주요국들이 한국 여행 경보를 발령했고, 주한 대사관들은 자국민 보호조치를 내렸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질 만한 일인가?’ 하며, 세계 70억 인구가 놀랐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은 국민의 것이 되었다.
 
국가 신용등급 강등될까? S&P와 무디스는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현재로서는 실질적 영향이 없다고 평가했으나, 정치 불안이 장기화한다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무산됨에 따라, 비상계엄 사태의 법적·정치적 책임을 묻고, 제2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표결하는 등 향후 정치적 불안이 쟁점이 될 것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경우,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이 투자 적격한 국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한국 유가증권시장으로부터 자금의 이탈이 더 크게 일어나고, 원화 가치는 더 급락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예산안 지연
국회가 멈춰 섰다. 수많은 국회의 기능들이 있다면, 탄핵정국하에 다른 사안을 논의할 수 없는 시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2025년 예산안 국회 심의마저 지연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따르면,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즉 12월 2일까지 예산안 심의·확정 및 이송해야 한다. 매년 예산안 국회 심의가 지연되었다고 하지만, 올해는 특히 심각한 지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예산 확정이 지연되면, 중앙관서별 예산의 배정과 집행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연말까지 예산이 확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려할 만한 초유의 사태에 놓이지는 않는다. 준예산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즉, 예산이 성립되지 못할 경우, 정부 기능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공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경기부양책이나, 2025년 트럼프 2.0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공급망 및 통상정책 등과 같은 2025년 새롭게 추진을 계획했던 사업이나 긴급 정책과제들을 착수하지 못할 수 있다. 예산 심의 지연을 떠나서도, 고위공직자들의 공백과 정치적 혼란은 대내외 리스크에 상시 대응 능력이 약화할 우려가 있다.
 
심각한 경기침체를 마주한 한국
문제는 한국 경제의 체력이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전부터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해 왔다. 한국은행도 11월 말 발표한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2.2%에서 1.9%로 하향조정했다. 이후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정국이 가져올 실물경제적 영향을 반영하여, 세계 주요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들은 속속 2025년 성장률을 하향 조정했다. 2024년 12월 이후 세계 어느 기관도 2025년 한국 경제성장률을 2% 이상으로 전망하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1주일도 안 된 상태이며, 탄핵정국이 장기화할수록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다.
 
해외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길 것이고, 정부와 기업들의 연말·연초 축제성 행사가 줄줄이 취소될 전망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의 거리에 징글벨 소리가 덜 울릴 것이고, 트리 장식과 불빛도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연말 특수를 노리고, 바겐세일 이벤트를 준비했던 유통사들은 조용한 연말을 준비하게 된다. 국내외 투자자금을 유치해 왔던 투자운용사들은 국내 유망 기업에 투자할 기회를 피력해 왔지만,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가계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기업의 투자심리도 위축된다.
 
 
1
[주요 기관의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조정/자료 각 기관] 



 
혼돈의 경제, 시스템적 대응
혼돈의 정치가 혼돈의 경제를 불러온다. 정치적 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정치 공백과 정책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치가 흔들릴지라도, 가계-기업-정부 3대 경제주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경제가 운용될 수 있도록 각 조직과 부문의 리더들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거대한 물음표가 놓였다. 정국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물음표를 경제학에서는 불확실성이라 한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불확실성이다.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에서 변동성이 심화할 수 있다. 채권시장이 불안해지면, 기업들의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실물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다. 금융·통화정책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주요 기축통화국들과 통화 스와프를 마련하거나, 유동성 공급책을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외환 및 금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관리되고 있음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외적으로 몰아닥치고 있는 소용돌이를 우회하는 노력도 뒤로 미룰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에 HBM 반도체를 공급하지 말 것을 선언한 상태고, 2025년 트럼프 행정부는 더 강한 무역전쟁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으로부터 경제보복이 단행될 수 있다. 반도체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에, 요소 공급 차단에만 머무를까? 반도체, 자동차, IT기기 등에 들어가는 리튬, 니켈, 게르마늄 등 핵심 소재들을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 아닌가.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고, 사전에 대응 전략들을 강구해 놓아야 한다. 정치가 흔들려도 경제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시스템적 대응이 필요하다.



김광석 필자 주요 이력

▷한양대 겸임교수 ▷전 삼정KPM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전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