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재계 서열 6위인 롯데그룹이 최근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는 설이 나돌았습니다. 다음 달 초에는 롯데그룹이 모라토리움 선언 후 제2의 대우그룹처럼 공중분해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이 탓에 지난주 롯데 계열사의 주가는 요동을 쳤습니다. 그룹 안팎으로도 계열사 자산 매각 추진 소식이 따르면서 유동성 위기가 틀린 얘기는 아닌 것으로 분석됩니다. 일주일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공시 타임라인 순으로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지난주 해당 보고서 명으로 총 17건이 올라왔는데요. 이 중 7건이 롯데케미칼, 롯데쇼핑, 롯데렌탈 등 롯데 계열사였습니다.
지라시가 나온 첫날 롯데 계열사의 주가는 출렁였습니다. 롯데지주는 52주 신저가를 맞이했습니다. 롯데케미칼과 롯데쇼핑 역시 각각 11%, 6%대의 하락폭을 보였습니다.
내용은 모두 유동성 위기로 인한 매각 추진에 대한 해명이었습니다. 먼저 롯데지주는 지난 18일 풍문에 대한 해명 공시를 내고 "현재 거론되고 있는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 관련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빠르게 반박하며 주가 방어에 나섰습니다.
매각설이 돌았던 롯데렌탈은 "최대주주 등의 당사 지분 매각 추진 보도와 관련해 당사의 최대주주 등은 외부로부터 롯데렌탈 지분 매각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며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습니다.
또 다른 유통 계열사인 롯데백화점도 부산 센텀시티점에 대해 매각을 포함해 다양한 자구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와 관련해 롯데백화점은 "매각 자문사를 선정했지만, 매각을 1순위로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영업 활성화와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흔들리고 있는 곳은 업황 악화로 일부 생산 라인 가동을 멈춘 롯데케미칼입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 21일 "롯데케미칼에 기한이익상실 원인 사유가 발생했다"고 공고했습니다. 롯데케미칼이 2013년 9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발행한 공모 사채 중 만기가 미도래한 14개 회사채에는 사채관리계약서상 재무비율 유지 조건이 있습니다. '3개년 누적 평균 에비타(EBITA·상각전 영업이익)/이자비용'을 5배 이상 유지해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올해 3분기 기준 롯데케미칼의 '3개년 누적 평균 에비타/이자비용'은 4.3배로 특약 조건을 준수하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했습니다. 이 특약에 해당하는 사채의 합산 발행 금액은 2조450억원으로 전체 회사채 잔액 2조2950억원의 89%입니다.
롯데케미칼은 "사채관리계약 특약조건 미준수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사채권자들과 순차 협의를 진행하고 있고,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특약사항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알렸습니다.
롯데 계열사의 유동성 악화 원인은 실적 부진, 업황 악화에 따른 커진 재무 부담입니다. 호텔롯데의 경우 올해 3분기 기준 1년 내 상환해야 할 단기차입금은 2조3061억원 수준입니다. 호텔롯데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7108억원)을 모두 동원해도 갚을 수 없는 규모죠.
호텔롯데는 3분기 말 기준 롯데쇼핑(8.86%), 롯데디에프리테일(91.52%), 롯데건설(43.30%), 롯데물산(32.83%), 롯데알미늄(38.23%), 롯데캐피탈(32.59%), 롯데상사(32.57%), 롯데지알에스(18.77%), 롯데글로벌로지스(10.87%)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면세사업 실적 악화 등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지자 롯데렌탈 등 관계사 지분 매각설이 나온 겁니다.
롯데케미칼도 화학업황 부진뿐 아니라 운임 상승, 환율 악화 탓에 회사채 이슈가 부각되면서 EOD 이슈가 발생했습니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는 롯데케미칼과 관련해 일제히 리포트를 내며 석유화학 업계 불황의 지속, 이자부담이 장기간 계속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준위 한기평 기업1실 수석연구원은 "특약 조건에 해당 내용이 포함돼 있는 한 중단기 내 기한이익상실 사유가 분기마다 반복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서연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 역시 "채권자들은 계약 변경에 동의하더라도 최근 채권금리 상승 등을 이유로 이자율 상향 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며 "계약 변경에 동의하지 않는 채권자들은 미상환 채권 잔액의 조기상환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채권자 간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채권자들은 EOD 선언을 위한 사채권자 집회를 소집해 해당 채권의 조기상환을 강제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 회사채가 기한이익상실을 맞게 될 경우 차입 약정에 따라 사채뿐 아니라 은행차입금 등 모든 차입금에 대한 기한이익을 상실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치만 롯데를 둘러싼 유동성 위기설은 과도하다고 증권업계는 분석합니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 차입금이 2021년 6조8000억원에서 지난해 9조7000억원대로 증가했지만 이는 인도네시아 LINE 프로젝트 및 일진머티리얼즈 인수에 따른 투자비가 급증한 영향”이라며 “이 차입금을 어떻게 관리할지도 이미 발표된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김정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롯데쇼핑과 관련해 "그룹 유동성 리스크 루머 이후 주가 하락이 과도한 상황”이라며 “영업이익이 개선되고, 현금화 가능한 자산도 있어서 유동성 우려는 실제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롯데그룹도 이와 관련해 지난 10월 기준 그룹 총자산은 139조원, 보유 주식 가치는 37조5000억원가량 있고, 즉시 활용 가능한 가용 예금도 15조4000억원 있다며 유동성 위기 수습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채권자 등 투자자에 대한 진정은 될 수 있어도 내부 진정은 되지 않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롯데 계열사 모두 현재 재무 개선을 위해 부채, 비용 줄이기에 나섰는데요.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직원들의 전환배치, 대기 발령이 무기한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직원들이 이직을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해당 업계 관계자는 "롯데가 자금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서는 비용 줄이기에만 힘쓰고 있다"며 "내부가 뒤숭숭한 것은 맞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