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KB금융·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기업대출을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나섰다. 올해 들어 6개월 연속 기업대출이 증가하며 위험가중자산(RWA)도 함께 급증한 탓이다. RWA 규모가 커지면 은행의 건전성 지표도 나빠진다. 최근 대기업이 자금 조달 수단으로 회사채 발행 선호도가 높아진 점도 기업대출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은 이달 들어 기업대출 잔액이 7444억원 줄었다. 지난달 말 830조3710억원에서 이달 18일 기준 829조6266억원으로 축소했다. 올해 4월부터 계속 증가하던 5대 은행 기업대출이 7개월 만에 감소세로 전환한 것이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 대출은 6995억원, 대기업 대출은 449억원의 감소 폭을 나타냈다.
실제 올해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RWA는 총 979조6113억원으로 지난해 말(909조6703억원)보다 69조9410억원 급증했다. 이는 지난 한 해 동안 늘어난 RWA 잔액 약 35조원 대비 두 배가량 되는 수치다. 통상 담보가 있는 가계대출보다는 리스크가 큰 기업대출에 대해 더 높은 가중치가 부여된다.
아직 주요 은행의 CET1 비율은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며 관리 부담이 더 커졌다. 환율이 오르면(원화 가치 절하) 외화대출의 원화 환산액이 커지고, 그만큼 RWA가 회계상 크게 잡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줄여 CET1 비율 관리에 힘쓰고 나선 이유다.
이에 일부 시중은행은 기업대출을 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은행은 이달부터 전 영업점에 ‘그룹장 여신금리 전결권’을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영업점 차원에서 개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우대금리 권한을 부여하지 않아 사실상 기업대출 영업을 멈추겠다는 의미다.
한편으론 기준금리가 떨어지며 대기업의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수요가 늘어난 점도 기업대출 잔액 감소의 원인으로 꼽힌다. 통상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 비용도 줄어 대기업의 은행 대출 선호도가 낮아진다. 실제 지난달 회사채 발행액은 16조1276억원으로 올해 들어 최대 월별 발행액을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19일까지 4조1644억원이 발행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부 시중은행은 올해 말까지 사실상 기업대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건전성 이슈 때문에 은행들이 기업대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