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9일 낮 12시 40분께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이 전 원장은 국내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 일인자로 민사법 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고 초기 헌법재판관으로 헌재의 이론적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 원장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8년 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해 판사가 됐으며,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대법원 재판연구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민사·형사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감사원장 등을 지냈다. 법원 재직 시절 이론을 겸비한 법관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 독일어와 일본어에도 모두 능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독일 이론을 소개해 민사소송법의 '탈일본화'에 공헌하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민사소송법 일인자로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1920∼2007) 지명으로 초대 헌법재판관으로 활약했다.
법조계 안팎에선 이 전 원장이 헌재 초기 이론적 기틀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이론적 기틀을 세우기 위해 독일 헌법재판 제도를 많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초대 조규광 헌재소장을 설득해 국내에 도입하는 등 초창기 헌법재판 제도 확립에 공을 들였고 제도 정착을 위한 외부 활동에도 나서기도 했다.
특히 이 전 원장은 헌법재판에서도 민사소송과 같은 가처분이 가능하다는 논지로 헌법재판 가처분 제도 도입을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다. 다만 재판관 재직 시절에는 실현되지 못했고 이 전 원장이 퇴임한 뒤에 도입돼 현재 활용되고 있다.
고인은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신민사소송법, 민사집행법, 판례해설 민사소송법, 민사소송입문, 주석민사소송법, 주석민사집행법 등이 있다.
그는 공직에서 은퇴한 뒤 모교에서 6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 변호사로 널리 알려진 고(故) 조영래 변호사, 전병서 중앙대 로스쿨 교수, 김경욱 고려대 로스쿨 교수, 정선주 서울대 로스쿨 교수 등 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 밖에도 한국민사법학회 회장을 지내며 민사법 학계를 이끌었고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한국민사집행법학회를 각각 창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이광득(광탄고 교장)·이항득씨(사업)와 며느리 김자호·이선영씨, 손녀 이지원씨(초등교사), 손녀사위 류성주씨(서강대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